예수를 잡은 자들이 끌고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가니
거기 서기관과 장로들이 모여 있더라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좇아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그 결국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 하속들과 함께 앉았더라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거짓증거를 찾으매
(마 26:57-59)
어느 순간,
나는 그 현장에 있었다.
나도 그들과 함께 예수님을 끌고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갔다.
나는 그들과 함께 예수님을 욕하고,
침을 뱉고, 수염을 뽑고,
손바닥으로 뺨을 때리고, 주먹으로 디지게 팼다.
어느 순간,
나는 베드로 옆에 서 있었다.
나는 베드로가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을 보고 비웃었다.
나같으면
예수님과 함께 죽을지언정
예수님을 절대 부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한 비자가 내게 와서
나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다고 말하는 순간
나는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면서 말했다
"나는 당신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비자가 나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습니다."
나는 맹세하고
또 부인하면서 말했다.
"나는 그 사람을 모른다니까요."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내게 말했다.
"너도 진실로 그 당이다.
네 말소리가 그 사람이랑 비슷하다."
나는 저주하며 맹세하여 말했다.
"아따, 내사 마 그 사람 찐짜 모른당께요."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나도 밖에 나가서
베드로와 함께 땅을 치며 심히 통곡했다.
내가 예수님을 부인하다니.
나는 절대로 부인하지 않으리라고 맹세했었는데.
어느 순간,
나는 로마군인이 되어있었다.
나는 다른 군인들과 함께 예수님을 욕했다.
"야, 이 셰꺄. 니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이 문디새끼. 지 몸 하나 구원 못하는게
웃기고 있네. 옘병할놈, 엿이나 쳐먹어라!"
나는 그들과 함께
가시면류관을 엮어서
예수님의 머리에 씌우고
예수님의 얼굴에 침뱉고 예수님을 희롱하고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
어느 순간,
나는 바라바가 되어있었다.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극악무도한 죄를 짓고
십자가에 못박히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내 죄가 워낙 크고 엄청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감히 용서해달라는 말을 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고개를 떨구고 벌벌 떨면서 서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내게 사면이 선고되었고
나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리고
나 대신 예수라고 하는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형을 받았다.
나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자유의 몸이 되다니.
나 같은 인간쓰레기가 죄사함을 받다니.
나는 예수께서 절규하듯 처절한 비명을 지르는 모습과
극심한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과
피로 얼룩진 모습을 바라보았다.
세상에.
그런 끔찍한 상태로
예수님은 장장 6시간동안이나 못박힌 채로 있었다.
내가 십자가에 못박혔어야 했는데.
예수님이 아닌
내가 그러한 고통을 겪었어야 마땅한데.
게다가
십자가에서 흘린 예수의 피로
나의 전과기록까지 흔적도 없이 삭제되었다니.
나는 벼락을 맞은 것과 같은
너무나도 엄청난 충격적인 감격으로 숨이 막힐 것만 같았고
몸이 얼어붙은 것처럼 꼼짝도 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난 후에
나는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목이 터지도록 엉엉 울면서
한없이 쏟아져 나오는
벅찬 감사와 감격의 눈물과 콧물로
땅바닥을 흠뻑 적셨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가장 먼저 내게 다가오셨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나는 감히 예수님의 얼굴을 뵙지도 못했다.
그분의 접근조차 두려웠다.
혹시 나를 심하게 벌하지 않을까 두려웠다.
예수님께서는 내 등을 어루만지시고
나를 꼬옥 껴안으시면서 감미로운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알라뷰. I"m still loving you. Ich liebe dich. 워 아이 니. 쥬뗌므."
순간 나의 두 눈에 이슬이 맺혔고
목이 메이고 가슴이 콱 막혀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세상에.
나 같으면 지옥에 던져버려도 시원찮을 텐데
여전히 나를 사랑하신다니.
내가 인간으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극악무도한 죄를 저지르고
그분께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만행을 저질렀는데도
여전히 나를 사랑하신다니.
나는 예수님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엉엉 울어대기 시작했다.
나의 눈물과 콧물이 예수님의 가슴을 흠뻑 적셨다.
어느덧 예수님의 눈시울도 뜨거워지면서
예수님도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셨다.
어찌나 많이 우시던지
예수님의 눈물이
내 머리카락을 흠뻑 적셨다.
그 이후
나는 예수님과의 관계를 회복했다.
내 안에 있던
예수님에 대한 죄의식과
나 자신에 대한 정죄감은
시간이 지나면서
예수님의 한없는 사랑으로
하나하나 지워지기 시작했다.
아울러
내 마음의 상처까지도
예수님의 치유의 손길로 말미암아
하나하나 아물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안에 박혀있던
수없이 많은 날카로운 칼과 거친 돌과 뾰족한 못을
예수님께서 하나하나 손수 빼주셨다.
때로 견딜 수 없이 아프고
이루 말할 수 없이 괴로웠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에 비하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끝까지 참았다.
치유하시는 예수님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보면서
예수님께서도 나의 아픔에 공감하고 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예수님의 눈물은 상처받은 내 영혼에 떨어져서
내 영혼을 치유하는 명약이 되었다.
예수님의 눈물이 상처받은 내 영혼에 떨어질 때면
마치 상처난 곳에 소독약을 바를 때 느끼는 것처럼
무지하게 아프고 쓰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눈물은 영혼 깊숙이 파고들면서
수많은 마음의 상처들을 어루만지고 위로했다.
때로 예수님의 눈물은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내 영혼을 소생시키는 양식이 되었다.
짭짤한 예수님의 눈물은
하나님의 말씀에
소금과 같은 역할을 했다.
예수님께서는 갈기갈기 찢어지고 깨지고
부서진 마음의 파편들을 모아서
하나님께서 직접 설계하신 모습 그대로
아름답게 회복시켜 주셨다.
그것은
기대
이상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푸른 초장 위에 누워있는 것이었을 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나는 나의 모든 것을
예수님께 맡길 수밖에 없었다.
나는 비참할 정도로 연약하고 무능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오른팔을 베개삼아 푸른 초장 위에 누워
낮에는 한없이 넓고 푸른 하늘을
밤에는 반짝이는 별과 달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것은 마치
한없이 넓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마음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하나님의 한없이 깊고도 넓은 마음이
우아하고도 아름답게 펼쳐진 하늘을 바라보며
예수님과 나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Oh! What a beautiful & wonderful talk!
시간이 흐르면서
예수님과 나는 마음을 나누게 되었고
어느덧 예수님과 나는 한 마음이 되었다.
이심전심(李心全心. 李순자마음 全두환마음.
꿍쳐둔 돈 빨리 사회에 환원하기를 바란다)
一心同體.
We understand each other
without the use of language.
치유를 받는 도중에
가끔 예수님과 함께 푸른 초장을 뒹굴면서
장난을 치기도 했다.
"나잡아봐~~~라"고 하시며 도망치시는 예수님의 뒤를 쫓아가
양손을 모으고 검지손가락을 앞으로 내밀어서
목표지점(?)에 정확히 명중시켰다.
이번에는 주객이 전도되어서
내가 도망치고 예수님이 나를 쫓아오셔서
기어이 동일한 방법으로 내게 인정사정없이 복수하셨다.
왼손으로 아픈 곳을 문지르고
오른손에 있는 오염(?)된 손가락을 상대방의 콧구멍에 들이대며
우리는 깔깔대며 웃었다.
예수님과 함께 장난치다가
예수님의 구멍 뚫린 손바닥에
내 검지손가락을 집어넣기도 했다.
하도 열심히 노느라
그 구멍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에 대해서
까맣게 잊고있었다.
문득,
예수님께서 겪으셨던
십자가의 고통이 생각났다.
아차 하는 생각에
나는 장난을 중지하고
잠시 숙연해졌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은 단지
해산의 고통일 따름이라고 하셨다.
나와 함께 장난치는 것이 무척 기쁘니까
분위기 깨지 말고
그냥 장난치는데 집중하라고 하셨다.
나는 다시금
예수님과 함께 장난치는 일에
나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했다.
내가 공부하는데 그 정도 역량을 투입했다면
난 아마 하버드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입학은 뒷문으로)
오염된 검지손가락을 씻기 위해
인근에 있는 호수가로 가서
예수님과 함께 손가락을 깨끗하게 씻었다.
손을 씻고 난 후에
나는 예수님을 물고문(?)했다.
이전에 갈릴리 호수가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예수님의 복수는 이루어졌다.
나는 거의 사망 일보직전에 이르렀었다.
그래도 나는 걱정하지 않았다.
만일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이를지라도
예수님께서 나를 소생시켜 주실 것이라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과 함께 놀던 그 장면은
마치 티없이 순수하고 해맑은
어린아이 둘이 노는 것 같았다.
지고지순함 그 자체였지.
순진무구함의 극치라고나 할까.
지금도 나는
예수님의 천진난만하기 그지없는
해맑은 함박웃음을 기억하고 있다.
예수님과의 친밀한 교제는
현재에도, 앞으로도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쭈우~~~~~~~~~~~~~~~(휴, 잠시 쉬었다 하겠슴돠)~~~~~~~~~~~~~~~~~ㄱ.
*살다보면 어렵고 힘든 순간들이 많이 있지만
때로 이렇게 기쁘고 즐거운 순간들이 있기에
어렵고 힘든 순간들을 이겨낼 수 있는 거다.
이 글을 읽으시고
강남금식기도원 부원장님이셨던
정일채 목사님께서 다음과 같은 메일을 보내주셨습니다. (2002.02.20)
할렐루야 주의 이름으로 사랑하는 김준현님
잔잔한 감동을 주며 가슴으로 파고드는 귀한 서신 참으로 잘 받았습니다
성령의 감동하심을 통해 일상 생활 속에서 경험하는 아름다운 간증들이
때로는 일백편의 형식적인 설교보다 더 많은 이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초대하는 영혼의 닻줄이 되고
죽어가는 영혼을 소성케 하는 생명수가 되어 돌짝 밭 같은 토양을 옥토로 변화 시키는가 하면
새로운 삶의 Turning Point를 발견케 하므로 그로 하여금 전혀 새로운 삶의 이정표를 세우고
큰 도전을 받아 마음껏 새로운 꿈과 Vision을 향해
달음박질 하도록 부추기는 싱싱한 활력소가 되어주기도 하지요!
형제님 !
님께서는 하나님께로 부터 아주 귀한 달란트를 선물로 받으신것 같네요
그 고귀한 달란트 밭에 감추인 보화처럼 땅에 묻어두지 마시고
더욱 갈고 닦아 보화 중의 보화가 아무리 캐내고 또 캐내며
퍼내고 또 퍼내도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자신의 내면속에 무궁 무진하게 매장되어 있는 것을 감사하시고
크리스챤 문인으로 아름다운 신앙소설 . 엣세이집 , 신앙시집을 엮어내시고
날이 갈수록 - - - 외치는 자 많건마는 생명수는 말랐어라 (찬256)
황폐화 되어 가는 한국 기독교 강단에 신선한 새 바람을 일으키소서
처녀 이스라엘아 너를 위하여 길標(Road-Sign)를 세우며
너를 위하여 標木(Guide-Post)을 만들고 大路
곧, 네가 전에 가던길에 着念하라 (렘31;21)
그렇습니다!
인생의 새로운 길표를 만드시고 표목을 바로 세워 놓으실때
하나님께서 친히 준현님의 앞길 위에 거침 없이 나아갈 수 있는 대로를 열어 주시고
당신의 영혼이 더 이상 방황치 않도록 인도하시는 길표가 되어 주시며
당신 영혼의 Guide -Post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님이시어 힘을 내소서 Fighting !
God Bless You Forever
화야산 골짜기 복음 마을에서 정일채 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