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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거지들 <꽁트>

007 RAMBO 2013. 11. 3. 18:21

어느 나라에 아주 인자하신 왕이 있었습니다.

이 왕은 백성들을 편견없이 골고루 사랑하고

특히 불쌍한 백성들을 많이 구제하였기 때문에

온 백성으로 부터 칭송을 들었습니다.

 

어느 초가을 날에 이 왕은 평민복장을 하고

신하 두어 사람을 대동하고 민정시찰을 떠났습니다.

그들이 나라 안을 이곳 저곳 다니다가, 어느 날엔 한 냇가에 앉아 쉬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들의 눈에 남루한 옷 차림을 한 사람들이 다리 밑에서 우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거지들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임금이 입을 열었습니다.

"오늘은 저기에 가서 거지들의 사는 모습을 구경해 보자꾸나."

신하들이 극구 말렸지만 왕은 단호했습니다.

"거지들도 분명 이 나라의 백성일찐대, 어찌 내가 무관심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셋은 거지들이 살고 있는 다리 밑으로 가서 거죽대기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엔 거지 다섯명이 살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낯선 손님들을 맞이한 거지들은 처음엔 당황하는 듯 하였으나

이내 이들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왕은 그들의 고생스러운 말들을 들으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반면 그들이 너무 배우지 못해서 온갖 욕설과 모함과

싸움질만 하는 것을 보고는 몹시 안타까웠습니다. 

그들에게도 배움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른 사람들 처럼

좋은 백성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왕은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왕은 그들 중 나이가 어린 세 사람을 왕궁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들 세 소년에게 각기 <갑택이> <을택이> <병택이>라는 새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희들은 오늘부터 이 왕궁에서 살게 되었다.  내가 너희의 아버지가 되어 주겠다.

이제부터 너희에게는 음식과 옷과 거주할 방이 주어질 것이다. 

가꿀 정원이 주어질 것이고, 공부할 책이 주어질 것이고, 타고 다닐 말이 주어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너희의 심부름을 해줄 종들이 주어질 것이다.

그 외에도 무엇이든지 필요하면 내게 구하도록 하여라. 가능하면 모든 것이 주어질 것이다. 

 

무엇보다도 너희에게는 자유가 주어졌느니라.  

공부하고 싶으면 공부할 수 있고, 사냥을 다니고 싶으면 사냥을 다닐 수 있다.

농사를 짓고 싶으면 농사도 지을 수 있고, 기술을 배우고 싶으면 여러가지 기술도 배울 수 있느니라.

먹거나 마시거나 놀거나 무슨 일을 해도 너희를 금하거나 쫓아낼 사람은 없을 것이니라.

 

다만, 언젠가는 너희들이 이 나라의 관원이 되어야할 터인즉,

그 때를 위하여 준비된 사람이 되도록 힘쓰거라.

너희의 준비된 정도에 따라 등용하여 쓸 것이다."

 

하루 아침에 왕궁에서 살면서 왕자같은 대접을 받게된 거지들은

처음엔 어리둥절하여 무엇을 어찌할 줄 몰라 하더니 

몇달이 가니까 그들도 이제 왕궁생활에 제법 익숙해져 갔습니다.

그리고 각자의 취미와 특기를 따라 자기들이 하고 싶은 일들에 매진하였습니다. 

 

갑택이는 왕의 은혜에 감복하였습니다. 

여태까지 살면서 그렇게 자기에게 잘해준 분이 없었고,

그렇게 고결한 분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자나 깨나 마음 속에 왕을 그리면서 마치 대화하듯  

혼잣말로 중얼거려 보기도 하였습니다. 

때로는 그 분의 은혜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왕과 같은 인자스럽고 의로운 성품과

덕망을 가질 수 있을까를 명상하는 일에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고마우신 임금님의 은혜에 어떻게 하면 보답할까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무엇보다도 그 분이 자기같은 하잘 것 없는 사람을 아들삼아주셨으니

이렇게 고마우신 분의 기대에 어긋나게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열심히 학문을 배우고 인품을 닦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행여나 자기의 부주의와 불찰로 그 분의 이름에 누를 끼쳐서는 안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을택이는 열심으로 책을 읽었습니다. 

왜냐하면 열심히 공부하면 세상에서 성공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지 생활할 때 가장 한이 되었던 것이 공부였습니다. 

그러니 이제 기회가 주어졌으니 부지런히 공부하여 나라의 중책을 맡은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임금이 언젠가 자신을 시험할 때가 올 텐데,

그 때 높은 점수를 받아서 고관대작으로 등용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밤낮 거의 책상 앞에 붙어 앉아서 읽고 쓰고 외우는데 열심을 다 했습니다. 

 

그런데 병택이는 정반대였습니다. 

는 날씨가 좋은 날엔 사냥을 나가고 궂은 날엔 기생과 더불어 먹고 마셨습니다.

그에겐 책도 흥미가 없었고 왕도 가까히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A와 B가 부지런히 자신을 갈고 닦는 것에 매진하는 것을 보고는 은근히 비웃었습니다.

("현재 주어진 세월은 다시는 안올 텐데...뭣하러 저렇게 재미없게 사나?

그 동안 먹어보지 못한 것 싫컷 먹어보고,

그 동안 못해본 것 싫컷 해보면서 살아도 시간이 모자랄텐데...

뭣하러 저렇게 밤낮 공부들이나 하면서 재미없이 살꼬...

나같이 놀고 먹으면서 자유롭게 산다고 해서 이곳에서 쫒겨나는 것도 아니잖아?  

또 그것이 내 본 모습이고...임금님이 나를 이곳으로 데려오실 때, 내가 그런 인간인 줄 몰랐나?

다 알면서도 나를 불쌍히 여겨서 데려오셨쟎아? 그럼 그 대로 살아야지...

우리가 애초 여기 들어온 것이 무슨 자격이 있어서 들어왔나? 또 공부시킬려고 데리고 오셨나?  

그러니 그 모습 그대로 가지고 살아도 누가 뭐래?...

뭣하러 피곤하게 자기를 고쳐서 다른 사람처럼 되려고 하지...?

아무튼 참 재미없는 친구들이야... 으이그~ . 쑥맥같은 짜~식들...")

 

사실, 이 친구에겐 왕에 대한 진정한 고마움이 없었습니다.

그 결과로 왕의 인품이고 성품이고는 관심밖의 것이었습니다.

다만 그에겐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만이 전부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모든 것이 주어진 현실에서 그 모든 것을 누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

자신을 개선하는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다만 그에게 최대의 관심사는 왕이 한 이말 ..

"너희들을 이 왕궁에서 쫒아낼 사람은 없을 것이다."라는 한 마디 말씀 뿐이었습니다.

이 말 한마디를 그는 믿고, 또  만족하였을 뿐입니다.

 

세월이 흘러 마침내 왕은 세 사람을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말했습니다.

"다음 달 초하루는 전국적으로 등용시험을 실시하는 날이다.

너희 세 명도 이 나라를 위해 어떻게 일할 것인지

각자가 공부한 과목에 시험에 응시하도록 하여라."

그래서 세 사람은 각자 자기의 연마한 과목에 응시를 하게 되었는데,

불행히도 병택이는 응시할 과목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과목들을 살펴보아도 먹고 마시고 노는 사람이 응시할 만한 과목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병택이는 시험을 포기하였습니다.

 

시험을 치루고 나니 갑택이와 을택이는 좋은 점수로 급제를 하였는데,

특별히 갑택이는 장원급제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갑택이는 예조부에서 일하게 되고, 

그리고 을택이도 공조부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에게 관복이 주어지고, 관모가 주어지고, 집이 하사가 되고, 여러 하인들이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매일 아침마다 만조백관이 참여하는 어전회의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갑택이는 매일 아침 왕의 얼굴을 뵙는 것 자체에 너무나 큰 행복을 느꼈습니다. 

 

그럴 때 쯤에 병택이는 아직도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밤에 마신 술에서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오후가 되어서 술에서 겨우 깨어났지만,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또 마셨습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바라보는 시선이 싫어서 그는 계속 취하여 있어야 마음이 편했습니다.

날이 갈 수록 그의 몸은 여러가지 병이 들어 쇠약해져 갔습니다.

왕이 좋은 약을 지어 보내어도 병은 낫지를 않았습니다.

갑택이와 을택이가 문병을 왔을 때는 일부러 더 깊이 취해서 대화를 회피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고칠 수 없는 병이 들어서 죽었습니다.

그가 죽자, 사람들은 그가 살던 다리 옆에 장사하고 그의 묘비에 

<망은(忘恩)이 잠들다.>라고 써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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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에 열매 없는 나무들을 바라 보면서 생각나는 대로 한번 써 보았습니다.

그렇게  봄.여름에  해와 비와 공기와 흙의 자양분들을 주었건만 ...

열매를 맺지 못한 것은 분명 <忘恩>이 아닐까요?

ㅎㅎㅎ

 

2013.11.3 주일오후 예배를 마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