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된 분노의 치유
최현주 / 규장문화사
I. 치유신학 일반
1. 치유(治癒)가 무엇인가?
치유라고 말했을 때, 그것은 먼저 병들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병든 상태를 본래의 건강한 상태로 회복(回復)하는 것을 가리켜 치유 또는 치료(治療)라고 부른다.
그래서 건강한 사람에게는 치유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으며, 병든 사람에게 치유라는 말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건강한 사람은 병원을 생각할 필요도, 갈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혹시 내가 병들었을는지 모른다고 생각한다면 병원에 가야하고, 의사의 진찰을 받아야 하며, 치유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질병의 경우에, 육신의 병을 치료하는 의학적(醫學的)인 입장에서만 생각한다면 병들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왜 건강하지 못하고, 육신과 마음이 병들게 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과 이유를 찾고자 한다면 그것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오직 성경 안에서만이 그 진정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성경은 우리 인간이 세상에 태어났으나, 병들고, 죽어야 하는 이유와 원인에 대해서 명쾌한 해답을 주고 있다.
그것은 죄와 하나님 나라와 관련되어 있으며, 그러므로, 치유는 반드시 인간의 죄 문제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가 없이 진정한 치유는 알 수도 기대할 수가 없는 것이다.
2. 하나님 나라와 내적(마음) 치유
1) 죄로 말미암아 깨어진 하나님 나라와 인간의 고통
우리 인간에게 언제부터 질병과 마음의 고통이 찾아왔는가?
그것은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께 범죄하고 타락 한 후부터 시작되었다.
마귀의 유혹에 빠져 하나님을 불신하고, 말씀에 불순종한 그 결과로
우리 사람이 이 땅에서 고생하고, 병들어 정녕 죽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병듦과 죽음은 단순히 육체적인 것만 아닌 정서적, 영적인 병과 함께 찾아왔던 것이다.
범죄한 인간은 하나님의 품을 떠나야 하였기에, 심각한 정서적 충격과 상처를 면할 수가 없었다.
버림받은 아픔(상실감), 고독감(쇠외감), 두려움, 불안, 슬픔 등 온갖 정서적인 장애가 찾아온 것이다.
이 아픔과 상처와 고통은 태고 적부터 끊임없는 저주의 사슬로 자손 대대로 이어져 왔던 것이다.
2)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회복과 치유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 인간과의 관계는 깨어지고, 하나님 나라는 파괴되었다.
하나님나라를 잃었으니, 그 고통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아픔과 슬픔이었다.
그것은 마치 한겨울 온실 속에서 키운 화초를 온실 밖에 내놓아서 추위와 눈보라를 맞게 하는 것에 비유될 수 있는 것이다.
상상해 보라. 우리 조상 아담과 하와의 충격을......
그런데 이러한 저주스런 고통과 슬픔의 대물림을 끊어버리시고, 잃어버린 낙원을 되찾아 주시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오셨던 것이다.
주님은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의 결박을 끊으셨고, 원수 마귀의 머리를 짓밟으시고 승리하심으로
진정한 치유의 은사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다.
이 땅에 오신 주님은 잃어버린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기 위해서 이사야 61장 말씀대로
죄사함(용서)와 평화(화해)의 복음을 전파하시고, 병든 육신, 병든 영혼을 치료하신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평화와 치유의 물결은 주님의 공생애 중에 드러나신 것이며, 또한 승천하신 후에 성령 강림을 시작으로,
주님의 교회와 성령 받은 사역자들을 통해서 주님은 지속적으로 치유의 은총을 나타내셨던 것이다.
오늘날도 주님께서는 성령 안에서 동일하게 교회를 통해서 역사하시고 계신다.
그러므로, 교회는 주님이 마음껏 역사하시도록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주님의 치유하심을 갈망하여야 하는 것이다.
3. 성인아이와 역기능 가정
1) 역기능 가정이란?
사람은 누구나 식욕, 수면욕, 성욕 등의 생리적인 욕구를 갖고 있듯이 또한 하나님은 정서적이며 심리적인 욕구를 주셨다.
그것은 가정 생활을 통해서 친밀감이나 소속감, 안정감을 누리고 싶은 욕구, 그리고 자녀양육에 보람을 느끼고 싶은 욕구를 지닌다.
가족치료학자들은 이러한 욕구가 정상적으로 충족되는 가정을 순기능 가정이라 부르고,
반대로 이러한 정상적인 욕구가 정상적으로 채워지지 않는 가정을 역기능 가정이라고 부른다.
가정에서 부부나 자녀들이 이러한 욕구들을 공유하고 친밀감을 누리고,
가정과 직장과 사회에서의 균형 있는 역할 분담을 통하여 각각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을 확인하고,
자녀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정상적인 의미와 보람을 느낀다면 이는 행복한 가정이며, 건강한 가정인 것이다.
2) 성인(成人) 아이란?
성인아이란? 역기능 가정에서 자라난 사람을 통틀어서 일컫는 말이다.
나이는 성인이 되었어도 정서적으로 어릴 때 받은 상처가 현재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말한다.
성인아이는 대개 우유부단(優柔不斷), 완전주의적이며, 자기비하와 자기혐오로 인해 자존감이 낮으며,
두려움과 수치심, 죄책감, 분노, 외로움, 우울감과 같은 정서적인 문제로 심적 고통을 겪으며,
지나치게 의존적이거나 조종적이고 통제적이어서 친밀한 인간관계를 누리지 못하여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다.
뿐만 아니라, 각종 스트레스로 인하여 편두통, 위장병, 무기력증, 심장병, 알레르기 등 각종 신체적 증상으로 고생한다.
3) 성인(成人) 아이와 역기능 가정
가정은 사람을 만드는 공장이라 할 수 있다. 역기능 가정은 성인아이를 만들어 내고,
성인아이가 결혼을 하면 역시 다른 역기능 가정을 만들게 된다. 또한 역기능적 목사는 역기능 교회를 만들어 내게 된다.
II. 『위장된 분노의 치유』(최현주 목사 저. 규장)
1. 저자의 자기 이력서
1) 어린시절 가정에서의 받은 부정적인 영향들-역기능 가정에서 성장
①조상의 영향-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영향을 주는 분은 바로 부모이다.
[부계(父系)]
<조부> 조모 외에 다른 여자와의 관계 속에서 큰누나보다 두 살 위인 고모를 낳음.
역기능 가정은 다음 세대에 또 다른 역기능 가정을 잉태하게 된다.
<부친> 알콜 중독자임. 이웃 사람들에게는 실수하지 않는 좋은 인상을 주는 분이나, 저자에게는 퍽 엄하셨다.
자신과 그 형제들을 한번도 업어준 일이 없는 자식에게 항상 엄하기만 한 부친이었다.
[모계(母系)]
<모친> 8세 때에 모친을 잃었다. 그런 모친이 다행스럽게도 저자와 자식들에게 애정을 쏟으시며, 헌신적이었으나,
그 애정을 표현하는데 있어서는 역기능 가정에서 자란 어머니로서는 한계가 있었다.
②저자의 <출생> 1954년 전남 여천군 거문도에서 6남매 중에서 여형제들 중에 넷째 독자로 태어남.
아버지의 직업은 수 십명의 선원을 거느린 선주로서 선원들의 생활까지 책임을 진 사람이었다.
③부산으로 1965년12세때 전학하여 부모를 떠나 친척집에서 외로운 생활을 하게 됨.
④역기능 가정의 모습들
<가정의 다툼> 알콜 중독자였던 아버지는 어머니와 때로는 구타까지 하면서 싸웠다.
자식으로서 아버지가 어머니를 구타하는 모습을 보게 되다. -분노와 적개심.
-아휴, 그냥 미쳐버릴 것 같다
/어린 영혼의 내면에 지울 수 없는 충격과 상처를 남겼던 것이다.
<외출을 엄금> 엄격한 아버지는 외부의 출입을 통제하였다.
그럴 때마다 단절감과 보이지 않는 감옥 속에 갇혀 있는 듯한 작은 절망감을 느끼곤 하였다.
<술을 잡수시던 모습> 매끼마다 술 한병씩 듦.
그 후 대학생활에서 술고래라는 소리를 들음. 목사가 된 후에도, 분노와 폭력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여
사모와 싸운 후에는 몇 차례 술을 마셨다. 이로 인하여 더 깊은 죄책감에 빠졌다.
* 알콜 중독자의 자녀들은 그렇지 않는 사람의 자녀보다 4배나 중독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학자들이 주장한다.
* 부모는 자식에게 가장 강력하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의미 있는 타인으로 매우 중요한 사람이다.
고의든, 불가피했던, 무의식 중이든 간에 내뱉는 말, 행동, 그리고 삶의 모습 하나 하나가
자식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는 것을 생각한다면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 치유의 과정
1) 이선애 사모의 치유를 위한 몸부림
기독교 가정에서 안정된 신앙정서를 소유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이선애사모와 그 가족들이 당하는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자녀들은 아빠를 증오했던 것이다. 목사라는 사람이 자식을 뺨따귀나 때리고, 자식을 왜 그렇게 키운데?
이러한 고통 속에서, 목사인 저자가 15일간 금식기도 하는 등의 온갖 몸부림을 쳤으나,
성인아이의 고통은 치유되지 않았으며, 이러한 와중에서 결국 사모는 심장병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하는 아픔을 겪게 된다.
이 때에 하나님의 인도로 국민일보에 성인아이를 도와주는 일을 하는 모임(신성회.新成會)이 있다는 기사를 보았던 것이다.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으로 찾던 중, 침신대 상담학교수인 정동섭 교수의 사모인 이영애 사모를 만나게 된다.
이러한 만남을 상담과 말씀, 독서요법을 통해서 이선애 사모가 먼저 자신을 발견하고 치유를 경험하게 된다.
그런 후에 기도하며 권고하던 끝에 최목사도 정동섭교수를 만나면서 하나님의 치유에 점점 접근하게 된 것이다.
2) 주님의 치유를 경험하게 되는 과정들
⑴ 내적치유에 대한 이론을 접하게 되다.
정동섭교수를 통해서 내면의 치유에 대하여 조금씩 알게되고, 자신의 내면세계에 대해서 눈이 서서히 열리게 되다.
「상한 감정의 치유」David A. 씨멘즈. 책을 6번 읽음.
⑵ 성인아이된 자신의 문제는 어린 시절 가정에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다.
성인아이의 특질상 문제의 뿌리를 자신의 가정(부모)에서 찾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수치심과 두려움, 자신의 과거의 가정에 대한 보호 본능 때문에, 그 과거사를 들추어내는 일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부모에게 책임을 추궁하거나 전가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내면 세계의 고통의 원인을 찾아 설명함으로서 고통의 원인을 찾고 치유함 받기 위해서는 부득이 한 것이다.
과거를 생각하기가 두려워서 우리의 뿌리를 덮어버린다면, 영영 성인아이의 고통에서 벗어날 길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치유 받기 위해서는 <아픔의 원인을 찾아서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⑶ 부모님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의 과거 속에 얼룩진 아픔들을 제공했던 분들에 대해서
우리는 결코 정죄하는 마음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알고자 하는 것은 나를 이해하고자 함이다.
나도 아빠된 자로서 부친이 그러한 환경 속에서 그런 행동들을 하였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에게 깊은 상처를 준 부모님을 복음 아래서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나 자신에게 치유를 가져오고 자유를 선포할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되었다.
⑷ 자신의 지난 과거 속에 나타나는 죄를 고백하여야 한다.
① 먼저는 과거의 회상 속에서 발견된 부모와 조상의 죄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해하고 용서해야 한다.
지금도 함께 있는 사람이 그 사람이라면 역시 마찬가지로 이해하고 용서해야 한다.
내 마음 속에 묶인 것들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풀어야 내가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나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다시 쓰는 나의 이력서>
② 그 다음 순으로, 과거 속에서 드러난 나의 허물과 죄들을 주님 앞에,
또는 나로 인하여 상처받은 이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 죄 고백해야 한다 (약 5:16)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③ 죄 고백의 효과
아픔을 털어놓지 못한 사람의 심정을 알겠는가?
그것이 바로 감옥이 아닐까? 우리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아무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특권이다.
그 감정 표현이 타인에게 상해를 입히지 않는 범위 안에서 말이다.
우리에게서 특히, 어린 시절의 아픔이 뿌리깊은 상처로 남는 것은,
그 아픔을 표현할 길이 없이 그대로 차곡차곡 쌓아만 왔기 때문이다.
그것이 장성하여 이유 없는 분노로, 또는 여러 가지 성인아이의 특징으로 나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백해야 산다. 내면에 숨겨두고 쌓아두면 언젠가는 또 폭발하고 말 것이다. (시 32:1-5)
④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내 인생의 죄 짐을 풀어놓아야 한다.
⑸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평화의 복음
예수님께서 2000년 전에 이미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에 진정한 해답을 주셨다.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통을 철저히 당하셨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이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의 아픔을 경험하셨고,
또 손을 들어 고통으로부터의 구원을 호소하는 주의 백성들에게 완벽한 구원과 해방을 주실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단순히 죽은 후에 천국에 가는 것만이 아니다.
오늘 여기의 우리의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을 제공하는 살아있는 복음인 것이다.
우리의 상처가 난 그날 거기에서도 우리를 보고 계셨고, 오늘 여기서도 그 아픔을 치유하시려고 함께 하고 계신 것이다.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 십자가는 곧 사랑이며, 용서이며, 치유이며,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회복인 것이다.
주님께로부터 끊임없이 용서받고, 다른 사람들을 나도 또한 용서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여러 치유를 경험한 사람들이 쓴 책이나, 자료들, 상담은
하나의 그리스도 안에서 치유로 인도하는 작은 도구일 뿐이다.
그 도구를 통해서 우리는 나 자신을 재발견하고, 그 안에서 용서하시고,
치유하시는 주님을 만나서 참 자유를 누리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주를 믿으면서도, 과거에 매여 고통 속에서 살아왔으며,
진정으로 복음의 능력을 부분적으로만 알았던 것이다.
우리가 십자가의 복음의 능력을 바로 알고, 받아들일 때에 우리는 패잔병처럼 살아가던 모습을 버리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기쁘고 당당하게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3. 치유과정을 통하여 얻은 영적 지혜
1) 치유를 경험한 자신이 본 치유 받기 전의 자화상(自畵像)
⑴ 자화상의 형성
데이비드 A. 씨맨즈 목사는 외부 세계로, 내부세계, 모든 악한 세력을 동반한
사탄, 그리고 하나님과 그 말씀에 의해서 형성된다고 했다.
자신의 부정적인 자화상은 별로 밝지 못한 환경(외부세계) 때문이다.
내가 받은 유전적 기질과 어린 시절의 가정환경, 특히 부모들로부터 받은
직.간접적인 영향들이 나의 부정적인 자화상을 형성하는데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
과거의 상처가 20년, 30년이 지난 뒤에 정서적인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고 하는 사실이다.
알콜 중독자 가정 출신의 성인아이들은 상처, 분노, 두려움, 모멸감, 슬픔, 부끄러움,
죄의식, 수줍음, 이질감, 고독, 불신, 불안, 위협, 우울감 등을 느끼게 된다. -찰스 셀-
⑵ 자화상(성인아이)의 다양한 모습들
저자는 자신이 치유를 경험하고 난 후에 발견한 과거의 아픈 자신의 자화상의 모습들을 총 39가지의 예를 들고 있는데,
그 중에서 일반적으로 성인아이에게서 공감되는 몇가지만 열거하고자 한다.
<수치심> 아버지의 술 심부름은 자신에게 굉장한 수치심을 가져다 주었고,
만취된 아버지를 부축할 때에는 큰 불만과 함께 사람의 눈초리를 의식했다.
이러한 수치감은 장성했어도 비교의식, 열등감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고,
낮은 삶과 목회하면서 낮은 성취감을 맛보면서 많은 수치감을 느끼며 살게 하였다.
만사에 소극적이며, 자신감을 얻지 못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열등감> 자신이 남보다 매우 열등하다고 생각하며, 자신은 못난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 생각보다는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것에 더 많은 신경을 쓰게 되는 것이다.
수치심과 열등감은 서로 친구관계이다.
<두려움과 공포심> 어버지는 장남인 나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셨다.
그 때문에 조금이라도 빗나가면 그것은 곧 통제로 나타났고, 나를 매우 엄하고 무섭게 다루셨다.
이것이 어린 나에게는 공포심으로 나타난 것이다. 또 하나의 공포심은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구타하는 것으로부터 심하게 맺혀진 것이다.
자신의 아내를 학대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동일한 학대감을 어린 자신이 당한 것이다.
<죄의식> 성인아이 특징 중에 하나는 자신의 일이 잘 되기를 바라고 있으면서도 막상 일이 잘 되어 가면,
오히려 자신에게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는 식의 묘한 감정을 갖곤 한다.
오히려 일이 잘 안 되는 것이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지나친 책임의식> 책임감은 좋은 것이지만, 무엇이든지 지나친 것은 좋지 않다.
우리의 죄 문제에 대해서도 복음 앞에서는 율법으로 책임질 일이 아니라 은혜로 받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책임감을 갖는다는 것과 지나친 책임의식, 그리고 죄책감은 엄밀히 구별되어야 한다.
<지나친 무책임> 성인아이에게는 초책임적이면서도 한편에는 지나치게 무책임하기도 하다.
특히 경제적인 면에서, 가족부양에 대해서도 자신이 그러했다.
<낮은 자존감> 자기가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자신을 멸시하는 것이다.
자신이 자신을 존중하지 않으니, 결국은 자신이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 된다.
<과민 반응> 생각하는 것이 지나 칠 정도로 민감할 뿐만 아니라,
외부의 자극에 대해서 지나치게 반응한다.
그것이 자신의 것과 맞지 않을 때는 분노를 터트린다.
또한 자신을 향한 타인의 평가에 대해서 지나치게 민감하다.
<흑백 논리가 강함> 인간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들 속에서 사람들의 행동과 마음을 이해하기보다는
나의 입장에서 그들이 나와 같지 않음을 용납하지 못한 채 경우에 따라서는 무자비하게 혹평하기도 한다.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이 정말 객관적인가를 생각하려고 하지도 않고서 말이다.
<변화무쌍한 감정> 성인아이의 아픔을 겪는 사람의 대부분은 감정의 굴곡이 심하다.
<고독감> 자신을 무리로부터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소외시키며, 외로워한다.
<부정적인 신앙태도> 나의 마음의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에서 긍정적이며, 적극적이지 못하고
오히려 부정적이며, 소극적이며, 파괴적이다.
그러다 보니 나의 삶의 분위기 자체가 밝지 못하고 어둡다.
<분노와 폭력> 모든 정서적인 문제들의 강줄기는 죄책감과 우울증의 댐에 가두어졌고,
어느 정도의 수위가 높아지면 분노와 폭력의 발전기를 돌리곤 한다.
그래서 식사 때도 분노가 폭발하면 여지없이 밥상이 날아가고, 그릇 깨어지는 소리가 나는 것이다.
2) 치유 받고, 변화된 자신의 모습
치유를 경험한 치유 사역자를 만남과 독서요법과 지속적인 상담을 통하여 더 깊은 주님의 치유를 경험하게 되었다.
사람이 변화될 수 있을까? 사람이 변화된다는 것은 기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 편에서의 시각이고,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는 기적이 아니라 아주 당연한 자연스런 것이다.
자신이 변화된 모습을 일일이 다 말하기는 어렵다. 변화된 우리 부부는 서로가 상대방이 변했다고 말하면서 기뻐했다.
서로 쳐다보면서 웃곤 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에 자신이 변한 것이다. 아내는 좋아하면서 12년 만에 찾은 행복이라고 했다.
그러나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정서적인 문제가 한 순간에 전혀 다 없어져 버린 것은 아니다.
어떤 것들은 아직도 조금씩 그 흔적들이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3) 치유를 위한 제언 -또 다른 사람을 치유하는 주님의 도구가 됨
(1) 하나님께서 치유하신다는 사실을 믿으라.
문제는 내가 가지고 있지만, 해답과 치유는 전적으로 치유하시는 하나님께 있다. 주님께서도 병자를 치유하실 때에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물으셨다.
(2) 우리의 문제의 원인을 찾기 위해서 과거로 돌아가자.
우리의 문제의 근원이 어린 시절 가정에 있다는 것은 흥분과 충격을 줄 것이다.
(3) 자신의 감정에 정직하자.
우리가 어두웠던 과거를 회상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인지 모르나,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서 기억나는 대로 그 길을 따라가는 것을 포기하지 말고 진행해야 한다.
(4) 고백하라.
우리의 문제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감정을 담아 입술을 통해서 내 마음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우리의 문제를 고백하는 것만으로도 치유의 효과가 있다.
(5) 자신을 용서하고 받아 들이라.
(6) 관련된 사람들을 이해하고 용서하라.
(7) 빠른 치유에 대한 조급한 생각을 버려라.
(8) 복음 안에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인정하라.
(9) 과거의 것에서 해방(자유)를 누리자.
(10) 복음 안에서 담대히 살라.
(11) 타인과 비교하지 말라.
(12) 넘어져도 괜찮다. 다시 일어나면 된다.
(13) 교제의 마당을 넓혀라
(14) 능동적인 삶의 자세를 가져라
III.『위장된 분노의 치유』를 읽고서
본서를 읽은 후에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음성이나,
자신이 깨닫고 느낀 점들을 요약해서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정리해 봅니다. 참고가 되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의 품을 떠난 우리 인간에게 100%의 완벽한 환경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러기에 이 땅에서 살았던 모든 사람은 정도의 차이가 다소 있을 뿐, 역기능 가정에서 자랐다고 보아야 하며,
그러기에 모든 사람은 성인아이의 기질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신의 가정 환경을 최선을 다하여 복된 가정 환경을 만들어야 할 책무가
우리 모든 부모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2. 그리스도를 믿는 많은 사람들 중에 특히 목회자 가정이 자칫 역기능 가정이 되기가 쉽다는 것이다.
더구나 목사가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는 안정된 기성교회라면 몰라도,
교회를 개척하는 목사에게서는 어쩌면 피할 수 없는 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자비하신 주님은 주의 종의 가정을 치료하여 주시는 것이다.
3. 15일이나 금식해도 해결되지 않았던 인간의 내면의 문제가 치유를 경험한 상담자를 만나서
계속적인 교제와, 독서요법을 통하여 해결되고, 치유를 경험한 것은 놀랄만한 일이다.
15일 금식기도로 해결되지 못한 것이 치유상담을 통해서 이루어졌다면 자칫 오해하기 쉽게 들려진다.
기도는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데, 어떻게 기도로는 안되고, 상담으로 되었단 말인가?하는 오해를 낳기 쉽다.
그러나 이 말을 긍정적으로 수용한다면 정말 의미 있는 말이다 라고 생각되었다.
이것은 기도 무용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했기에 이러한 방법으로 응답된 것이다.
그리고 상담 속에, 독서요법 속에 어떻게 기도가 없었을까?
중요한 것은 기도는 하되 치유상담 요법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치유에 접근하였던 것이다.
주님은 정말 우리를 치료하신다. 어떻게 말씀과 성령 안에서 말이다.
우리 인간의 상한 내면의 감정을 어루만져 치료하시는 주님의 방법이 다를 뿐이다.
4. 이 책은 목회자인 나 자신과, 우리 가정이 역기능 가정의 길을 따라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가정 문제로 인하여, 또한 목회자와 사모의 정서적인 불안정은
곧 자신의 자녀들을 장차 성인아이로 만들기가 십상이라는 것이다.
5. 치유신학에 대한 보다 더 깊고 넓은 연구가 필요하다.
특히 치유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찾기 위해서는,
실제 치유를 경험한 사람들의 실예를 자신에게 적용하기 위해서
많은 양서를 탐독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을 저자는 독서요법이라고 말한다.
- 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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