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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먹어보고서

007 RAMBO 2015. 11. 3. 09:15

피자 먹어보고서

2015.10.27 22:07

 

 


 

1994년 어느 늦은 밤, 난생 처음으로 매질을 당했다. 우습게도 발단은 '피자' 였다. 어머니 친구분께서 집에 놀러오시며, 겸사겸사 커다란 피자를 한판 사오신 것이다. 나는 그동안 한국인이라면 응당 쌀을 먹어야 한다는 아버지 밑에서, 양식을 드문드문 먹으며 자랐다. 그러니 아마도 그 날 맛본 피자가 내 생이 최초의 피자였을 것이다. 골지로 만들어진 납작하고 커다란 상자는 내부의 음식을 완벽하게 보호해주고 있었다. 식사가 끝난 후 두 조각의 피자가 남았는데, 혹시라도 그 음식이 버려질까 두려웠던 나는, 모종의 결심을 실행에 옮긴다.



어머니께서 후식을 내러 응접실로 가신 사이, 피자상자를 냉장고 안으로 '통째' 옮겨넣은 것이다. 어머니께서 다시금 부엌으로 돌아오셨을 때는, 냉장고에 있어야할 음식들이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깜짝 놀라 열어제낀 냉장고 안에는 피자 상자가 실로 위풍당당한 자태를 뽐내며 꽉 들어차 있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나를 불러다 놓고, 왜 맞아야 하는지 차근차근 설명해 주신 다음, 볼기짝을 사정없이 두들기셨다. '고통' 보다는 손찌검을 당했다는 '충격' 이 컸는데, 이후에도 꾸준히 '피자' 를 찾은걸 보니 이 정체모를 음식에 썩 호감을 품은게 틀림없다.


두 학생이 위치타 주 Bluff and Kellogg 거리에 세운 피자헛 1호점

 

그토록 인상깊은 피자의 맛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유감이지만, 그게 '피자헛' 이라는 것만은 잘 알고있다. 피자헛 국내 1호점은 1985년도에 이태원에 문을 열었다. 본토 (미국) 의 1호점이 1958년에 시작되었으니, 우리 나라로 건너오기까지 거진 30년이 걸린 셈이다. 그로부터 다시 30년이 흐른 2015년. 피자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배달 음식 중 다섯 손가락 안에 손꼽힌다. 세계적인 위상도 한층 높아졌다. 사람들은 탄수화물 위에 다채로운 재료를 얹어낸 음식을 설명할 때 '이를테면 피자같은 음식' 이라고 묘사하는 것을 편안히 여긴다.



21세기에 이르러 최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피자. 사실 생각보다 오래된 음식은 아니다. 어떤 형태의 음식을 '피자' 로 인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문제지만, 빵과 토마토의 결합을 조건으로 할 경우, 채 300년이 되지 않았다. 주재료인 토마토의 원산지가 남미의 안데스 (마야인들과 아즈텍인이 재배함) 였기 때문이다. 바다 건너 이탈리아로 수입된 최초의 기록은 1544년이다. 당시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토마토를 겉과 속이 같아 '천박하고' 생김새가 '요사스러우며' 먹으면 죽는 '악마의 식물' 정도로 여겼기 때문에 재배를 꺼리고 있었다.


초기 피자인 마리나라는 아마도 끄트머리가 더 거뭇거뭇 탔겠죠

 

실제로 토마토 줄기와 잎사귀에 독성이 존재하므로 중상모략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몇몇 지역에서는 상당한 사랑을 받았다. Pomo d'oro (황금 사과) 라는 애칭이 생겼을 정도다. 특히 베수비오 화산 인근의 비옥한 땅에서 무럭무럭 자라났는데, 향후 '나폴리 피자' 의 명성을 떠올려 보면 의미심장한 일이다. 18세기에는 이미 피자 가게가 생겼고, 19세기부터는 종종 문헌에 등장한다. 전신기를 발명한 사무엘 모스는 피자를 두고 '토마토 조각을 쳐바르고, 작은 물고기들과 후추를 뿌린 (..) 하수구 악취가 풍기는 빵 쪼가리' 라 표현했다.


   이 분이 대놓고 피자를 까신 동화계의 대부 카를로 콜로디 십니다 ㅋㅋ

 

다른 이탈리아 지역의 사람들의 평가 역시 다르지 않았다. 동화 피노키오의 작가 카를로 콜로디는 '노점상의 더러움에 걸맞은 오물 덩어리처럼 보인다.' 며 심하게 깎아내렸다. 어째서 피자는 이토록 격 없고 흠 많은 음식으로 받아들여졌을까? 이유인즉슨 간단하다. 피자가 실제로 가난한 자를 위한 패스트 푸드였기 때문이다. 파스타의 경우 어디까지나 요리를 담을 그릇이 필요하다. 반면 피자는 빵 부분을 받침 삼아 들고서도 씹어먹을 수 있다. 게다가 토마토는 비주류 작물로서 가격이 저렴했기 때문에, 소작농들에게 적절한 '토핑' 으로 환영받았다.


   사진 속 저 애매한 물체는 피자일까요? 아닐까요?

 

충분한 온도를 지닌 화덕이 있을 경우, 만들어지는 시간이 굉장히 빨랐다. 힘으로 치댄 밀가루 반죽에 토마토 으깬 것을 대충 바르고, 정어리나 멸치 등등을 얹고, 비릿한 생선내음을 잡기 위해 마늘이나 후추, 오레가노, 바질 등등을 얹었다. '빨리' 나오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으니, 잘못해서 가장자리가 타는 정도는 불평할 깜냥도 못되었다. 피자는 귀족 계층에게 천한 음식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서민들에게는 든든한 사랑을 받으며 은밀하고 위대하게 자신의 영역을 넓혀나갔다. 이런 인식이 뒤집힌 것은 너무나도 유명한 마르게리따 여왕 덕분이다.



1889년, 통일 이탈리아의 2대 국왕 움베르토 1세와 여왕 마르게리따가 나폴리를 방문했다. 프랑스 요리에 질려있던 부부는 뭔가 새로운 음식을 맛볼 생각으로 피자 요리사를 불렀다. 진상된 피자는 세 종류였는데, 여왕은 그 중에서 토마토와 모짜렐라 치즈, 바질을 쓴 피자에 마음을 빼앗겼다. 새로이 '마르게리따' 라는 이름까지 하사 받았건만, 전국민적 지지를 받는 음식이 되기까지는 몇십 년이 더 걸린다. 여기에 일조한 것은 재밌게도 1920년대 무솔리니 정권이다. 이들은 파시즘을 실현하기 위한 정책으로 밀 생산량을 늘리자는 운동을 펼쳤는데.


   빵이라도 권해준 게 어딥니까, 인상보니까 그마저도 안 주실 뻔 했네요

 

밀을 자급자족함으로써 자주권을 되찾고, 내수 시장을 다지겠다는 논리인데, 공교롭게도 이탈리아의 파스타는 대부분 수입산 경질 밀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무솔리니 정권은 남부에서 재배되는 '연질 밀' 을 이용해 '빵' 만들어 먹기를 적극 권장했고, 이를 틈타 피자가 한층 인기를 얻는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직후엔 많은 이들이 피자의 맛을 알게 되었으며, 교통과 이주가 발달로 이탈리아 국내외에 퍼져나간 자국민을 따라 나폴리 피자 역시 세계여행을 떠난다. 어느덧 피자는 이탈리아인들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어엿한 지위를 얻게 된다.


   지금도 잘 팔리고 있는 롬바르디스 아저씨네 피자.jpg

 

그렇다면 이탈리아 피자와 어딘지 모르게 달라보이는 미국식 피자는 어떻게 만들어진걸까? 그 답은 미국으로 건너간 이탈리아 노동자들에게 있다. 1905년, 이탈리아 이주민 젠나르 롬바르디스 씨가 미국의 심장 뉴욕에, 공식적으로 인가받은 피자 가게를 차린다. 고향의 맛을 그리워한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은 외식으로 열심히 피자를 선택했다. 세계 전쟁 중에도 피자는 미 전역으로 바쁘게 퍼져나갔다. 1943년 시카고에서는 풍부한 맛을 살려, 특별히 더 두툼하게 만든 딥디쉬 피자가 등장한다. 한국에서도 만나볼 수 있는 <피쩨리아 우노> 다.



인스턴트 식품시장의 규모가 커지던 50년대에는, 최초로 냉동피자를 선보이면서 주부들로부터 지지를 얻는다. 게다가 에스닉 푸드 (이국의 전통적인 느낌이 살아있는 음식) 가 인기를 끌면서, 피자는 이탈리아의 soul food 중 하나로 인식되기에 이른다. 쉽게 접할 수 있고 내키면 어떤 조합으로도 쉽게 어우러지는 범용성은 세계인을 사로잡는 비결이 된다. 1960년대를 전후해서는 획기적인 '배달' 시스템의 도입으로, 전화 한통으로 피자를 받아볼 수 있게 된다. 지금은 세계적인 브랜드가 된 피자헛 (1958) 과 도미노 (1960) 가 이때 문을 열었다.


   소피아 로렌 같은 미녀가 직접 피자를 만들어 준다면

 

아이러니하지만 이탈리아에서는, 미국식 피자의 발빠른 성장세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지역화된 피자가  이탈리아 색을 저버리고 변화하는 모습에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1984년도에, 나폴리 피자를 '보존' 해야겠다고 결심한 이들이 모여, 정통 나폴리 피자협회 Associazione Verace Pizza Napoletana:AVPN 를 설립한다. 그리고 와인과 치즈의 품질을 담보하는 Denominazione di origine controllata:DOC 제도를 피자에도 도입하기로 마음먹는다. 1997년에는 드디어 DOC 기준에 준하는 피자를 만들어 인증에 성공한다.



반죽의 경우 반드시 밀가루, 소금, 물, 천연 효모를 통해 만들어야 한다. 치댈 때에는 반죽을 과열시키지 않는 믹서나 손만을 써야 하고, 모양을 잡을 때도 손으로만 잡아야 한다. 구울 때는 종 모양의 장작 오븐을 이용해야 하는데, 내부 온도가 480도 여야 하며, 팬이나 용기를 써서는 안된다. 정통 나폴리 피자의 종류는 마르게리따 피자, 마리나라 피자 (토마토, 올리브유, 오레가노, 마늘) 마르게리따 엑스트라 피자 (토마토, 방울토마토, 모짜렐라, 기름, 바질) 만이다. 이러한 요건을 지켜낼 경우 AVPN 은 VERA (진짜) 피자라는 인증서를 발급해준다.



이렇게 대략적인 피자의 역사훑기가 끝났다. 여담이지만, 피자를 볼 때마다 우리나라 음식이 '세계화' 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거라는 희망을 얻는다. 우선 이탈리아는 우리나라와 닮은 점이 참 많다. 지역색이 강하고, 민족주의적인 성향이 강하며, 국토의 70 퍼센트가 산지에, 위도까지 비슷하고, 쌀 문화를 공유한다. 그네들의 pizza는 빵이라는 베이스에 토마토라는 아군을 얻었고, 여남은 어떤 재료들과도 잘 어울리는 열린 음식이다. 한국의 비빔밥 역시 밥이라는 베이스에 고추라는 아군을 얻었고, 다양한 고명과 비벼먹을 때 저력을 발휘한다.



다만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넘어야할 산이 꽤 많다. 피자가 전세계로 퍼져나가기까지 상황적으로 유리한 요소들이, 우리에게는 부재한다. 고로 그 기회를 스스로 창출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 우선 우리 스스로 비빔밥을 즐겨먹어야 하며, 만들어지게 된 유래와 담겨있는 뜻을 정확히 규명할 필요가 있다. 영양학적 근거를 조사하는 것은 물론, 전세계 배우들과 매체를 힘닿는데까지 이용해서 공격적으로 홍보를 시도해야 한다. 비빔밥이 '일종의 한국 피자' 로 설명 되기보다, 피자가 '일종의 이탈리아 비빔밥' 으로 설명되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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