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열·서송희 부부의 심리학 콘서트
'중년, 나도 아프다'](150)
곁에 꼭 필요한 누군가 그 한 사람
이성과 감정이 어우러진 인간은
아무리 머리로는 결심하고 다짐하지만
마음속 크고 작은 상처들이
심심치 않게 불쑥불쑥 올라온다.
때론 분을 내며 때론 자책하며 오늘도 버틴다.
간식과 보상이 효력을 발휘할 때도 있지만
일시적일 때도 있다.
나는 동물들이 등장하는 프로를 즐겨본다.
직접 키우지 않기에 대리만족한다.
워낙 반려동물 가정이 많다 보니
여러 채널에서 다양한 볼거리와 정보를 제공해 즐겁다.
그런데 사람들이 동물들과 교감하며
정성껏 보살피는 마음을 보며
종종 그들의 동물 사랑에 감동한다.
더 놀라운 것은 아직 미혼인 주인들도
거침없이 자기 스스로를 엄마 아빠라고 호칭하며
온갖 좋은 음식을 주고 때론 나눠먹는 모습이 재밌기도 하고
가끔은 오지랖이라는 생각에 혀를 차기도 한다.
그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그 아이들은 더 이상 일반 개나 고양이가 아니라고.
자기들과 함께 살고, 먹고 자는 식구라며
내 자식이기에 특별하고
그래서 더 소중하게 보살피며
함께 마음을 나눈단다.
반려견의 행동을 고치는 훈련사
특히 자신의 반려동물이 특별한 외모와
남다른 재주가 있을 땐
주인의 자식 사랑은 대단하다.
반면에 녀석들이 병들고 노쇠한 경우
말 못하는 자식을 바라보며
안타까워 눈물을 보이기도 하고
손쓸 수 없는 나쁜 버릇이라도 들면
주인들의 상심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때로는 그들의 횡포가 주변뿐 아니라
주인의 삶을 상당한 곤경에 빠뜨림에도 불구하고
주인들은 그 힘든 치다꺼리를 기꺼이 하며
알아듣지도 못하는 개를 붙잡고 달래고
한바탕 훈시를 한다.
그들의 어미가 되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아니 저 꼴을 어떻게 저렇게 지켜보는지 의아하지만
주인의 애타는 마음이야 내가 어찌 다 알겠는가.
그러나 이런 참담한 생각에 빠질 때면
어김없이 ‘개통령’이라는 따뜻한 카리스마의
멋진 훈련사가 등장하니
그때마다 나의 시선은 금세 기대감으로 바뀐다.
이때쯤이면 그가 나타날 것을 알기에
그가 뒤엉킨 실타래, 쑥대밭이 된 관계들을
어떻게 풀어줄지 기다려진다.
어릴 적 영화관에서 악당을 물리치는
정의의 사도가 나타나면 관객들이 박수치듯
그가 등장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박수치며
사정없이 짖어대는 녀석들의 버르장머리를
당장 고쳐주기를 고대한다.
그러나 훈련사는 나처럼 흥분하지 않고
절도 있고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 곁에
때로는 가까이 때론 멀리, 때론 무심한 척 있었다.
말썽꾸러기 녀석들은 처음엔 맹렬히 저항하지만
어느 순간 맥없이 꼬리를 내리고
훈련사의 주변을 킁킁거리며 순해지는 모습이 참 신기하다.
뛰어난 방송편집 기술로
그사이 잠깐 정신교육이라도 시킨 건 아닌가
의심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은 훈련사의 절제된 행동과
그들을 향한 존중과 애정,
그리고 주머니 속 마술 같은 간식이
그들을 우아한 본래 모습으로 이끄는 전부였다.
자책하지 말고 앞만 보고 가기를
나는 사람도 저런 방식으로 잘못된 행동이 바뀔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방송을 볼 때마다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나의 생각은 이내 힘을 잃는다.
만물의 영장, 도덕적 존재인 인간이
과연 애정과 존중, 보상만으로 변화될 존재인가.
가치와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인데 말이다.
지난 겨울 17살의 상수가 상담실에 왔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의 권유와 어머니의 걱정으로 내게 보내졌었다.
평범한 아이였다.
그가 던진 물건이 재수없게 친구의 얼굴에 맞아
피가 나서 학교로부터 징계를 받았단다.
졸업이 위태로웠다.
상담 내내 자신의 재수없음을 한탄했다.
물론 자신의 작은 요구를 친구가 거절하는 바람에
일이 이렇게 커지게 됐다는 원망이 있었지만
엄마에게 또다시 실망을 드려 미안하단다.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니?”
“네. 몇 번 있었어요.
조심했는데 이번에도 또 재수없게 됐어요.”
“조심했는데도 비슷한 일이 또 벌어지면
참 난감하고 많이 속상하지.”
“휴대전화 좀 잠깐만 보여 달라고 했는데
안 보여줘서 화가 나서….
별것도 아닌데 그 새끼 때문에….”
그 아인 친구를 원망하고 결과를 못내 아쉬워했다.
“그때 네가 많이 지쳤었구나.
별것도 아닌 일에 불쑥 화가 난 걸 보니.”
그 아인 이 한마디에 고개를 떨궜다.
잠시 후 자신의 속마음을 조금 꺼냈다.
엄마가 항암치료를 받는데
스트레스가 암의 원인이라고 들었단다.
주변 친척들이 ‘우리 집안에 아무도 암에 걸린 사람이 없는데
왜 네 엄마만 암에 걸렸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아무래도 자기 때문에 엄마가 암에 걸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래서 엄마의 소원대로 다시는 말썽 안 피우고
무사히 졸업하겠다고 마음먹고 그동안 참고 참았는데
막판에 이렇게 돼서 엄마한테 너무 죄송하다고 눈물을 훔친다.
나는 주머니 속 마술 같은 간식을 듬뿍 줘서라도
‘그게 아니라고’
그가 바르게 알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자책하지 말고 앞만 보고 가라고.
그러나 이성과 감정이 어우러진 인간은
아무리 머리로는 결심하고 다짐하지만
마음속 크고 작은 상처들이
심심치 않게 불쑥불쑥 올라온다.
언제부터 내 안에 들어와 잘하느니 못하느니
주인행세를 하는지도 모르는 것들로
때론 분을 내며 때론 자책하며 오늘도 버틴다.
간식과 보상이 효력을 발휘할 때도 있지만
일시적일 때도 있다.
그런 자기 자신도 괴롭고,
그걸 보는 주위 사람도 아프다.
그러나 내뱉지 않고는 걸려 넘어질
크고 작은 감정들의 일렁임을 말하고 들어줄
누군가 한 명만 곁에 있으면
서서히 자기 길을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 인간에게 필요한 간식은
그 한 명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최선을 다해 잘하고 있다는 사인.
괜찮은 길로 가고 있다는 이정표.
서로가 서로에게 그런 간식이 돼주면 좋겠다.
서송희 만남과 풀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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