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열·서송희 부부의 심리학 콘서트 ‘중년, 나도 아프다’](149)
믿고 기다려줄 때 자녀는 스스로 자란다
‘믿음’은 ‘내가 어려울 때
나를 도와줄 것이라는 확신’이다.
자녀가 부모를 믿는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내가 어려울 때 부모는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나를 도와줄 것이다”라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한국의 부모들은 항상 자식들에게 미안하다.
항상 더 잘 해주지 못해 부족한 것 같고
부모의 도리를 다 못한 것 같아
‘부족한 부모 만나 보란 듯이 살아가지 못하는’
자녀를 볼 때마다 미안하고 안쓰럽다.
오죽하면 여성들이 세계에서 제일 애를 적게 낳는 나라가 됐을까?
자녀교육 강좌를 하면 꼭 빠지지 않는 질문이 있다.
“어떻게 하면 자녀를 잘 키울 수 있을까요?”
자녀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이 오죽 크면
이 질문이 우리나라의 모든 부모들 마음속에서
한 번도 떠나지 않을까?
교육(敎育)을 한자의 의미대로 풀어본다면
‘가르칠 교(敎)’와 ‘기를 육(育)’의 합성어다.
즉 ‘가르치고 기르는 것’이 교육이라는 뜻이다.
이때 가르치고 기르는 주체는 당연히 부모다.
그러니 항상 ‘어떻게?’라는 생각이
부모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부모-자녀 동일체’ 의식 강한 한국
한국의 부모들이 자녀교육을 중시하는 것은
그만큼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심리적으로 큰 의미를 둔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어느 나라나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교육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유독 한국 부모들에게 큰 의미로 다가오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의 가족주의의 특징은
‘부모-자녀 동일체’ 의식이 강하다는 것이다.
부모와 자녀는 ‘하나’이기 때문에
자식이 잘 되는 것이 바로 부모가 잘 되는 길이기도 한 것이다.
동시에 ‘부모 노릇’을 얼마나 잘 했는지 여부는
자식이 얼마나 잘 됐는지의 여부로 판가름 난다고 여긴다.
부모가 아무리 잘 나간다고 해도 자식이 변변치 못하면
‘자기 자식도 잘 못키운 주제에’라는 핀잔의 눈초리를 받게 마련이다.
그래서 ‘자식을 잘 못키운 죄’는 형법에는 없을지 몰라도,
문화법(文化法), 심정법(心情法)에서는 큰 죄다.
지난 6월 3일 세계 여자골프 최고 권위의 대회인
US여자오픈대회에서 이정은 선수가 우승했다.
언론 매체에서 소개된 그녀는 정말 어렵게 골프를 했다.
아버지는 이정은 선수가 4세 때 교통사고를 당해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그녀는 아버지가 운전하는 장애인용 자동차를 타고 국내 투어 생활을 했다.
골프장에서는 아버지의 휠체어를 밀어주곤 했다.
전남 순천 출신인 이정은 선수는 어릴 적 잠시 골프를 배우다
가정형편이 너무 어려워 골프를 중단한 적도 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 ‘순천에는 여성 티칭 프로가 없으니
세미프로가 되면 먹고사는 데는 지장 없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다시 골프를 시작했다.
즉 그녀는 앞으로 먹고살기에 지장이 없는
경제적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골프를 계속했다.
그녀는 “아버지 몸이 불편하시고 엄마 건강도 아주 좋은 것은 아니어서 걱정된다.
부모님은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는데 그래도 자식 입장에서 걱정이 된다”며
한동안 미국 진출 꿈을 접을 생각을 했을 정도로 효녀 골퍼로 소문나 있다.
1994년 5월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은 패륜범죄가 일어났다.
당시 23세의 박모씨가 재산을 노리고 부모를 처참하게 살해한 후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방화까지 저지른 사건이었다.
당시 서울 강남경찰서에 근무하면서
이 사건을 담당했던 조상복 경감은 이렇게 말했다.
“공부에 취미가 없는 아들 때문에
평소 부자 간 갈등이 깊었다고 한다.
지방대에 간신히 들어가긴 했는데
부모 자존심상 그게 허락되지 않았던 거다.
돈이 있으니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는데
거기서도 박씨는 학업은 뒷전이고 속을 썩였다고 한다.
박씨는 부모의 기대수준에 미치지 못해
완고한 아버지와 적잖은 갈등을 겪어왔으며
박씨의 어머니는 사사건건 부딪히는 부자 사이에서
전전긍긍하며 아들을 감싸느라 애를 태우고….
경제적으로는 풍족했지만
집안은 한시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는 거였다.”
(<일요신문>, 2007·3·18)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아버지의 장애인용 차를 타고
골프대회에 참석했던 이정은 선수의 US여자오픈대회 우승과
풍족한 가정환경에 유학까지 보내준 부모를 살해한 박씨의 사건은
“자녀를 잘 키운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자녀를 잘 키울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줄 수 있다.
어떤 환경이 좋은 환경인가?
좋은 가정환경에서 자녀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모두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환경이 좋은 환경인가?”라는 질문에는
명확한 답을 하기가 쉽지 않다.
가장 먼저 경제적인 여유를 들 수 있다.
“자녀에게 변변히 해준 것이 없다”고
안쓰러워하는 부모들이 주로 지적하는 것이 경제적 여유가 없어
“남들처럼 하고 싶다는 것을 다 해주지 못했다”는 미안한 마음이다.
하지만 이정은 선수와 박씨의 경우를 보면
경제적 여유는 필요조건은 될 수 있을지언정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좋은 가정환경은
결국 부모와 자녀 간의 관계의 질이다.
부모와 자녀가 서로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형편은
오히려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더욱 친밀하게 결속시켜줄 수 있다.
반대로 경제적으로 풍족한 가정형편은
오히려 부모를 살해할 동기가 될 수도 있다.
바람직한 부모-자녀 관계는
상호 신뢰에서 나온다.
특히 자녀가 부모를 믿을 때
좋은 관계가 형성된다.
자녀가 어렸을 때
기본적 신뢰능력을 키워야 한다.
즉 ‘나’를 믿고 ‘너’를 믿고 ‘우리’를 믿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능력은 부모와의 관계에서 형성된다.
‘믿음’은 ‘내가 어려울 때
나를 도와줄 것이라는 확신’이다.
자녀가 부모를 믿는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내가 어려울 때 부모는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나를 도와줄 것이다’라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박씨의 경우에는 아버지를 믿지 못했다.
결국 자신이 힘들 때 아버지가 도와주기는커녕
오히려 비난만 한다고 생각했다.
객관적 사실이 그런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박씨가 주관적으로 생각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 결과 아버지의 재산을 얻기 위해 패륜을 저질렀다.
부모 입장에서는 자녀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고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화가 나기도 하고 낙심이 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끝까지 자녀에게 줄 믿음은
‘네가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모습을 보여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이는 말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부모가 자녀와 함께하는 관계를 통해 느끼는 것이다.
자녀를 사랑한다는 것은
잘못을 저질렀어도 받아준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당연히 엄하게 꾸짖는 것을 포함한다.
다만 중요한 점은 ‘네가 한 행동은 잘못된 것이다.
앞으로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네가 그런 행동을 한다고 해서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고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육(育)’ 자에는 ‘키우다’라는 뜻 외에
‘자라다’라는 뜻도 있다.
자녀는 부모가 생각하는 대로 키우기만 해서는 안 된다.
자녀가 스스로 자랄 수 있다는 것을
믿고 기다리며 응원해주는 것도 필요하다.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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