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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께 말을 거는 것이 이상한 일인가?

007 RAMBO 2020. 7. 21. 20:31

 

* 성령님께 말을 거는 것이 이상한 일인가?

조태성

 

.

종종 안타까운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내가 부족한 사람인 것은 맞지만

성령님께서 인격적인 분이시라는 가르침은 진리다. 

 

인격적이신 성령님과 동행하며

친밀한 교제를 나눠야 한다는 가르침은 진리다. 

 

그런데 상담 오신 분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다. 

체한 것처럼 말이다. 이런 상담을 했다.

 

1.

목사님 책을 읽고 얼마나 은혜를 많이 받았는지 몰라요. 

내가 성령님과 함께 살면서 교제 나누는 존재라는 사실에 얼마나 감사했는지요. 

그런데 하루는 헷갈리는 부분이 있었거든요.

 

성령님을 친밀하게 존중해드리고자 말을 거는 삶을 살다보니

기도를 누구에게 해야 하는지 헷갈리더라고요. 

그래서 성령사역 하시는 기도원 목사님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여쭤봤어요.”

 

2.

목사님, 성령님께 기도해도 될까요?”

 

그런데 성령사역 하신다는 그 기도원 목사님이 이렇게 답변해주셨다고 한다.

 

아니, 뭐 하러 성령님께 기도해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한다.

 

성령님께 기도한다는 생각을 하신다니 그건 이상한데요.”

 

3.

집사님께서 다시 여쭤보신다.

 

그러면 성령님께 말을 걸고 대화하는 건요?”

 

저는 그런 생각을 해본적도 없고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요. 

그냥 예수님께 기도하고 말하면 될 것 같은데요.”

 

4.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집사님은

가슴이 탁 막힌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한다. 

 

그 목사님께서 은사사역은 하시지만

성령님과 인격적으로 관계는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상함을 느끼셨다면서

내게 다시 여쭤보신다.

 

목사님, 은사사역을 하시는데요. 

성령사역자라고 하시는데도

정말 성령님을 인격적인 분으로 모를 수 있나요? 

아니겠죠? 제가 착각한 거죠?”

 

5.

한두 명이 아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경험하시거나

비슷한 질문을 가진 분들을 만날 때면

같은 목회자로서 부끄럽다. 답답하다. 

 

다른 글에서 잠시 언급한 적이 있다. 

명함에 자신을 스스로 <성령사역자 ㅇㅇㅇ목사>라고 써서 뿌리고 다닌다. 

그 아래는 이런 홍보 문구도 있다.

 

- 백 퍼센트 병고침!

- 백 퍼센트 정확한 예언!

- 백 퍼센트 완벽한 축사!

- 백 퍼센트 은사 임파테이션!

 

6.

어떻게 성령님과 친밀하지 않은데 성령사역자 이겠는가! 

어떻게 성령님과 교제 나누지 않는데 당당히 성령사역자라고 할 수 있는가! 

어떻게 성령님을 인격적인 분으로 인식하지 못하는데 성령사역자라고 자처할 수 있을까? 

 

은사가 나타나도 그는 성령님과 인격적으로 아무 상관도 없고 관계도 없다. 

그렇다면 마치 에베소의 어떤 제자들의 고백과 같은 상태일 수 있지 않을까.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했다.”

 

7.

은사가 나타나기에 은사사역자일 수는 있지만, 

성령님을 모르니 성령사역자라고 보기 어렵지 않을까? 

 

오히려 은사가 안 나타나더라도

성령님과 친밀하게 교제 나누며 동행하는 삶을 산다면

누구나 성령사역자가 아닐까? 

목사가 아니고 성도라 하더라도 말이다.

 

한편으로는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은 분들과의 만남과 교제도 있다. 

잘 통하는 분들을 만날 때다. 

 

특히, 직분과 상관없이

성령님을 존중해드리는 삶에 노력하시는 분들을 만나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8.

그런 의미에서 엊그제 참 잘 통하는 목사님과 전화로 교제를 나눴다. 

예전부터 알던 분이 아니다. 처음 뵙는 분이시다. 

 

그런데도 오래 알고 지내던 분인 것처럼

말과 대화, 마음이 너무 잘 통한다. 

왜냐하면 함께 성령님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분은 10년 넘게 성령님과 친밀하게 교제 나누는 삶을 살아오신 목사님이시다. 

주로 대전과 대구 지역에서 열심히 사역하신다. 

 

주변에 그 목사님과 함께 교제 나누시는 목회자분들께서

내게 먼저 연락하셔서 이렇게 소개해주신다.

 

9.

목사님, 그 목사님께서도 조 목사님처럼

얼마나 성령님과 인격적으로 동행하는 삶을 사시는지 몰라요. 

 

저희는 그 목사님을 통해 성령님께서 얼마나 중요한 분이신지 자주 듣고 있어요. 

그 목사님을 통해서 조 목사님도 알게 되고 목사님 책들도 추천해주셔서

너무 큰 은혜를 받을 수 있었어요.”

 

그렇게 소개받은 목사님께서 먼저 연락을 주셨다. 

내가 훨씬 어린데도 불구하고

령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쓰임 받고 있음을 존중해주신다. 

 

나를 통해 집필하게 하신 성령님에 대한 책들을 읽으시고

주변에 지금도 많이 선물해주신다고 하셔서 송구하고 참 감사했다. 

 

곧 몇몇 목사님들과 우리 교회에 방문해주신다고 하셨는데

함께 교제 나눌 생각에 벌써 기대가 된다.

 

10.

그분과 소통하면서도 절감한 것이 있다. 

성령님을 존중해드리며 사는 분들은 비슷하게 느끼는 지점들이 있다는 거다. 

내 주변 사람들이 신앙생활과 삶에서 성령님을 잘 의지하지 않을 때 속상하다. 

 

반대로 모르는 누군가일지라도

성령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는 삶을 살면

내가 더 기쁜 마음이 된다. 

 

마치 친한 친구가 있는데

다른 사람이 내 절친을 칭찬할 때

내 마음이 기쁘고 우쭐해지는 것과 같다.

 

부족한 내게도 한 가지 꿈이 있다.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친밀하게 교제 나누며

동행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의 연합이다. 

 

성령님을 자각하고 존중해드리는 분들이 많아지도록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는 연합을 꿈꾼다. 

 

함께 성령님과 더 친밀해지는 훈련도 진행하는 모임을 꿈꾼다. 

성령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성장하도록 돕는 모임을 꿈꾼다.

 

11.

그래서 일단 성령님에 대한 글들을 계속 나누고 있는 거다. 

부르심 가운데 한 가지인 책의 집필 활동을 통해

성령님에 대해 소개하고 나누는 거다. 

 

운영 중인 인터넷 카페와 페북에서

성령님에 대해 부족한 문장실력이나마 글을 올리고 있다. 

 

겸손하시며 넓은 마음을 가지신 분들께서

넓은 마음으로 품어주셔서 감사한 마음이다.

 

특히, 페북에서도 함께 성령님을 존중해드리는 삶을

훈련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감사하다. 

 

개인적 친분은 없었지만 성령님을 존중해드리는 삶을

중요하게 여기시는 분들이 계셔서 감사하다. 

 

그분들과 페북에서의 교제가 실제 만남의 교제로 이어지곤 하는데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귀한 말씀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1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4:2-3)

 

성령님께서, 성령님 안에서 하나 되게 하심을

힘써 지키시는 분들과의 만남과 교제가 더욱 기대된다.

 

부족한 사람을 넓은 마음과 사랑으로 품어주시고

교제 나눠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