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속에 들보를 보지 못하고 나를 모르면
남에게 나는 담벽처럼 느껴진다
자기 입장에서만 나를 주장하게 되면
그 사람에게는 친구가 없다.
나를 허물어 버려야
상대가 들어 올 틈이 생긴다.
믿음이란 자기를 부인하는데서 시작된다.
나로 가득하면 말씀이 내 자리에 들어와 자리 잡을 틈이 없다.
나를 버리고 나를 내려놓는 것은
믿음의 첫 걸음마라 할 수 있다.
걸음마가 제대로 되어야
빨리 갈 수도 있고 뛸 수도 있다.
자기 의가 강한 사람은
자기의 뜻이 하나님의 뜻이라 단정짓기가 쉽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은
절대로 내 능력으로 감당할 수가 없다.
실패하는 사역자들의 대부분이
내 능력으로 하려 하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다.
모든 능력이 하나님으로 부터 온다는 사실을 깔고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으면
그것은 주님의 일이 아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이 일 하시도록
하나님께 내어 맡겨 드리는 것이다.
영적전쟁에서 이미 승리가 보장되었다는 의미가 여기서 나온다.
하나님이 일하시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일은 승리를 보장할 수 없으나
하나님이 하시면 그 싸움은 하나마나 이긴 싸움이다.
아이성이 작다고 내가 하려고 하다가
쓰디쓴 실패를 맛 보았듯이
'나'라는 존재가 하나님을 대신 하면
반드시 실패한다.
믿음은 말씀을 따라 가는 길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앞에서 방황할 때에
하나님이 친히 홍해를 갈라 주셨듯이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이 하신다.
그러나 광야에서 40년간 훈련을 받은 그들에게
요단을 건널 때에는 지도자인 제사장들이 먼저
말씀을 따라 발을 디뎌야 했다.
초신자 때에는 하나님이 해주셨지만
신앙의 훈련을 받은 자들은 말씀을 따라
훈련 받은 대로 직접 나가야 한다.
이 땅에서 하늘에 쏘아 올린 인공위성을 제어 하듯이
성도는 말씀으로 나의 자세와 방향을 교정하며
제어함을 받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우리가 할 수 없는
홍해도 요단강도 갈라지는 역사가 일어난다.
내가 하려 하지 말고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말씀따라 사는 인생이 되어야
순탄한 나그네의 길을 갈 수가 있는 것이다.
봉민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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