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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의 영성 2

007 RAMBO 2020. 4. 2. 09:38

온유를 이해한다는 것은 실상 어려운 일입니다.

그 말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단어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이해하면

온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약의 스가랴는 오실 메시야는 온유한 분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슥9:9).


사도바울도 예수님을 온유하고 관용이 있는 분으로(고후10:1)소개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부드럽고 친절한 분이셨습니다.

관용을 베풀며 겸손하고 겸비한 분이셨습니다.


그는 불쌍한 사람들을 보고 함께 마음이 아파하였고

가난하고 연약한 자들에게 친절을 베푸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온유는 또 다른 면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온유가 힘없고 나약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개하고 노해야 할 때는 가차없이 외칠 수 있는

담대함과 강함을 가졌습니다.


온유한 모세도 산아래서 금송아지를 만들고

우상숭배하는 백성을 보고는 정의로운 분노를 보여주었습니다.


온유란 할 말도 못하는 소심하고 비겁한 성격이 아닙니다.

불의를 보고는 대담하게 외칠 수 있는 힘이 있는 성품입니다.


겸허하다는 것, 부드럽다는 것과 비겁한 것은 다릅니다.

유순하다는 것과 유약하다는 것과는 다릅니다.


온유는 부드러움 속의 강함이고

겸허함 속에 권위를 지니고 있는 성품입니다.


이러한 온유한 자들은 진정한 힘을 가진 자들입니다.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힘을 가진 자들입니다.


세상에서는 힘이 없는 유약한 자로 보일지 모르지만

이 온유한 예수님은 죽음도 이기신 힘있는 분이셨습니다.


세상이 얘기하는 힘은 아니지만

이 힘은 신령한 힘이고 영원한 힘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선생도 이렇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약1:21)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세상에 이름이 떨치고 있는 강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세상을 정복했다고 생각을 하여 교만이 하늘을 치솟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神으로 섬겨도 좋겠다고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교만한 왕이 이스라엘 백성을 포로로 데리고 오면서 새로운 도전을 받게 됩니다.

다니엘이라는 하나님의 사람은 참으로 온유하고 부드럽고 친절한 사람이었으나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에서 한치도 양보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채식을 먹는 다니엘의 친구들도 불 속에 들어가서 죽음 앞에 섰지만

그들의 온유한 대응은 결국 천사의 도움으로 구제되기도 하였습니다.


느부갓네살은 그들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자신은 정치와 군사력을 통해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을 하였지만

다니엘과 친구들을 보면 가장 유약한 사람들이

무엇인가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는 밖으로 쫓김을 받고 이슬과 먼지를 먹으면서

야생동물들과 7년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그는 머리를 기르고

손톱도 새 발톱과 같이 기르며 일곱해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이 주장하는 세상적인 힘은 하나님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졌습니다.

그가 갖고 있는 힘은 거짓 힘이었으며 일시적이며 현세적인 힘이었습니다.

 

그러한 다니엘과 친구가 갖고 있는 힘은 바로 온유의 힘이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힘을 갖고 있는 온유였습니다.


그러므로 부러질 것 같으면서도 부러지지 아니하고

생기와 활동성을 갖고 있는 힘을 갖고 있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이 총명이 다시 돌아 온 후에 하나님을 찬양하며

“무릇 교만한 자를 능히 낮추시는 이”임을 고백하였습니다.


이러한 온유한 성품 때문에

생활에서 열리는 열매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온유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스림을 받아서

말할 때 할 수 있고 행동을 할 때 할 수 있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는 겸허한 순종을 보이는 자이고

인간에게는 존경과 겸손으로 대할 수 있는 성품입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약함이나 비겁함이 아니라

불의에 대항해서는 대담하고 용기 있게 일어설 수 있는 성품입니다.


바로 이러한 모범이 되신 분이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은 하나님이시면서도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6-8).


그리고 사도 바울은 우리가 이러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빌2:5).

바로 이 마음이 겸허하고 자기를 낮추신 그리스도의 온유한 마음입니다.

그럴 때 기쁨이 충만해진다고 사도 바울은 고백하였습니다(빌2:4).


증인의 영성은 이러한 온유의 영성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증인이라고 할 때

우리는 상당히 담대하고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증인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자로서 온유한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도, 베드로도 요한도 이렇게 온유한 마음을 품게 되었을 때에

참 증인의 사명을 다 감당할 수가 있었습니다.


가장 유약한 것과 같은 온유의 영성이

땅을 차지하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리스도의 마음인 온유를 품게 될 때에

증인은 참으로 주님에 대한 목격자로서의 사명을 다 감당할 수가 있습니다.

 

 

윤남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