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찬양은 말씀을 잘 듣기 위한
마음밭을 갈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찬양의 역할은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찬양 자체가 예배이며 성령충만하고 활발한 찬양의 유익이 많다.
활발하게 찬양하는 것은 어린애나 젊은이들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어른이 어린 아이 같은 마음이 되어서 드려야 한다.
하나님은 어린아이같이 순진하고 겸손한 사람이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시지 않았는가? (마 18:3)
나의 전통과 경험을 중시하여서 종교적 열정을 경시한다면
돌들이라도 들어서 사용하겠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나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마 3:9)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훨씬 이전에 계신 하나님 앞에서
내 나이가 40세, 50세, 60세가 되었다고 어른 행세를 해야 하는가?
다만 체력 문제로 격렬한 찬송을 오랫동안 부리기 힘든 경우는 있다.
그러므로 인도자가 이러한 점들을 잘 배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활발한 찬양을 드리는 것은
성경의 명령일 뿐 아니라
우리에게 엄청난 유익이 있다.
내 심령이 치유된다
감정적으로 손짓하며 큰 목소리로
때로는 슬프게 때로는 즐겁게 부르는 찬양은
우리의 상한 심령을 치유해 준다.
시편에는 탄식시의 수가 60개가 넘으며,
다른 형식의 시편에도 탄식시의 요소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험난한 만큼,
오늘을 사는 우리의 신앙 역정도 험난한 것이 아닌가?
요즈음에는 세속의 정신치료에도
음악의 역할이 중시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수천 년 전에
음악을 통한 치유책을 마련해 놓으신 것이다.
특히 고난과 위로의 찬송이나 복음성가가 이러한 역할을 한다.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찬양함이 선함이여
찬송함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며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를 모으시며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메시는도다 (시 147:1-3).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보다 가깝고 강하게 체험한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예배는
부질없는 인간의 행사에 불과하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찬양 중에 거하는 하나님이시다. (시 22:3)
하나님은 찬양 받으시기 위해 우리를 창조하셨고(사 42:7, 21),
천국에 가면 성경공부나 말씀선포는 없어도 찬양은 여전히 존재한다.
(계 4:7-11; 5:9-14; 7:9-12; 11:15-18; 12:10-12; 19:1-8)
뜨겁게 찬양하면 하나님의 임재를 더욱 가깝고 강하게 체험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찬양 중에 하나님의 크신 영광이 임하시기 때문이다. (역대하 5:13-14).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부르는 찬양과
그렇지 않은 찬양에는 차이가 있다.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찬양은
하나님의 임재를 더욱 가까이 강하게 느끼게 한다.
찬양만큼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한 감사를 잘 표현하는 드물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곧 찬양으로 표현된다.
기쁜 일이 있으면 즐거운 노래가락이 흘러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너희 중에 고통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어다"(야고보서 5:13)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시 100:4)
찬양은 가르치고 권면하는 수단이다
억지로 무엇을 암송하는 것보다,
음악의 멜로디를 동반하여 교리나 신조를 교육하는 것은
기독교는 물론 세속에서도 너무나 잘 알려진 방법이다.
그만큼 찬양은 하나님과 신자들과의 관계를
이해하기 쉽고 외우기 쉽게 잘 표현한다.
성경에서는 찬송을 통하여 서로 가르치고 권면하라고 말한다. (엡 5:19; 골 3:16)
특히 빌 2:6-11; 골 1:15-20; 엡 5:14; 딤전 3:16은 초대교회 당시에 유행하던 찬송가인데
교리적인 가르침이 주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종교지도자들은 기독교의 기본 교리를 가르치고 권면하기 위해
자주 노래의 형태를 취한다.
찬양은 마음밭을 부드럽게 갈아 준다
세상 근심과 염려로 찌들고
온갖 육신적인 생각으로 굳어있던 마음밭이
찬양을 통해 부드럽게 갈아진다.
그 결과 세상 것에서 벗어나 하늘 것을 사모하고
말씀의 씨앗이 싹을 내고 뿌리를 내어
열매 맺는 것을 도와준다.
찬양은 영적 무기이다
찬양과 '용사이신 하나님'과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기도가 하나님으로 하여금 일을 하시게 만드는 만큼
우리가 찬양할 때 용사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적--죄와 사단--과 싸우신다.
우리가 찬양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호해 주신다.
"예루살렘아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시온아 네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
자기 네 문빗장을 견고히 하시고
너의 가운데 자녀에게 복을 주셨으며
네 경내를 평안케 하시고
아름다운 밀로 너를 배불리시며"(시 147:12-14)
우리가 찬양할 때
하나님께서는 곤경에 빠진 우리를 긍휼히 보셔서
악의 손에서 건져내 주시고 우리를 위해 대적을 멸하신다.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을 공격할 때
나팔을 부는 제사장들을 앞세웠다.
마지막 날에 여리고 성을 일곱 번 돌고
온 백성들이 크게 외쳤을 때 여리고 성이 무너졌다. (수 6:20)
모압과 암몬의 대군을 맞이한 유다의 여호사밧 왕은 겁에 질려 사색이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
'이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염려 말라고 하셨다. (대하 20장)
이에 유다의 군대들이 성가대를 앞세우고
여호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찬양할 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싸워 주셔서 전쟁에 승리했다.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산 사람을 치게 하시므로
저희가 패하였으니" (대하 20:22)
이와 같이 우리가 찬양할 때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해 싸워 주신다.
찬양과 하나님의 말씀은
강력한 영적인 무기이다.
"그 입에는 하나님의 존영이요 그 수중에는 두 날 가진 칼이로다.
이것으로 열방에 보수하며 민족들을 벌하며
저희 왕들은 사슬로 저희 귀인은 철고랑으로 결박하고" (시 149: 6-8)
우리가 하나님께 뜨겁게 찬양할 때
상한 심령이 치유 받고 귀신이 쫓겨난다.
다윗이 수금을 켤 때 사울 왕의 악신이 물러갔다.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취하여 손으로 탄 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신은 그에게서 떠나니라" (삼상 16:23; 19:9 참조)
그러므로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우리의 고백도 이렇게 되어야 한다.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 146:2-5).
"할렐루야! 그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그의 능하신 행동을 인하여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광대하심을 쫓아 찬양할지어다.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소고하며 춤추며 찬양하며 높은 소리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큰 소리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시 150)
- 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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