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7장 33절)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대부분의 사람은 불치병에 걸리거나 사고로 목숨을 잃는 것을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목숨을 잃는다는 것은 인생 막바지에 가서 생각할 일이라고 치부합니다.
그래서인지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보전하리라’는 말씀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습니다.
온통 우리의 관심은 잘사는 데 있습니다.
“다 살아 보자고 하는 것 아닙니까”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삶의 간절함, 연민마저 느껴집니다.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홍수가 나서 노아의 가족만 살아남고 다 죽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살던 시절에도 그랬습니다(눅 17:27∼28).
불과 유황이 비 오듯 했습니다.
그 결과 롯과 그의 딸들만 살아남고 다 죽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에도 이와 같습니다.
그때는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의 살림살이가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라고 합니다.
만일 밭에 있다면 뒤로 돌이키지 말라고 하십니다.
성경은 뒤를 돌아보면서 소금 기둥이 된 롯의 아내처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해서 멸망을 면하라고 말씀합니다.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입니다.
마지막 날에 자기 목숨을 지키려는 애틋한 모습도, 생활 방식을 고집하는 집요한 모습도,
자기를 방어하는 말들로 똘똘 뭉친 모습도 사라질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생활방식과 언어 속에 우리의 목숨은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착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지으신 분이 누구신지,
목숨을 지탱하도록 환경을 주시고 관계를 주시는 분이 누구신지 모르고 삽니다.
현대인들은 죄의 맛으로 절여진 생활방식, 언어습관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죄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이런 것들을 버리는 것이
마치 목숨을 잃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다 보니 구습으로 굳은 사람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노아처럼
생명을 보전할 수 있을까요?
주님의 명령은 단호합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며 사는 사람(롬 12:2)이 되라고 명하십니다.
자신을 한번 돌아봅시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큰 것, 더 나은 것에만 집중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갈보리 십자가 밑에서 반성해야 합니다.
그런 신앙인은 예수님의 제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크리스천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예수님을 알아가고
닮아가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심판의 날 하나님 앞에 바로 서려면 지금 이 시간 목숨을 다해
주님을 닮아가는 연습에 집중해야 합니다.
죄의 맛으로 익숙해진 생활방식과 언어를 버리는 훈련을 합시다.
예수님을 알아가고 닮아가는 동안 채워지는 은혜에 감사하며
주님의 길을 따라가는 여정에 집중합시다.
- 이준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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