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 개종한 형제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자신은 기독교에 와서 몇 시간 기도 하는 것이
너무나 쉽고 좋다고 했다.
불교에 있을 때에 새벽 예불에 익숙해서인지
새벽 기도하는 생활에도 힘든 줄 모르겠다고 했다.
불교에서 처럼 108배 라든가 3000배 절하는 것처럼 힘이 들지 않기 때문에
기독교의 기도야말로 식은죽 먹기라는 말을 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기도 생활에
많은 부담을 느끼며 교회 생활을 한다.
기도를 오래 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게으름이 기도생활을 적극적으로 못하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다음으로는 바쁘다는 핑계로 하지 않는 경우일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부족해서 오는 현상들이다.
사랑하는 이와 연애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바빠도 만나서 데이트를 즐기는 일에 적극적인 것처럼
주님을 사랑한다면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기도의 시간을 만들게 마련이다.
사랑한다면 부모가 자식을 위해 목숨을 버리듯
그것에 대하여 절대적인 가치를 둘 것이다.
한국 교회의 병폐중의 하나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종교 행위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다.
관습에 따른 예배에 참석은 소중히 여기는 반면에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한 사랑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주님을 사랑한다면 어찌 교제를 끊을 수 있으리요.
형제도 멀리 떨어져 오랜만에 만나면 서먹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가까이 사는 이웃 사촌이 더 좋다는 말도 생겼을 것이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비례한다.
많이 사람하는 사람은 많이 기도하게 되고
덜 사랑하는 사람은 무관심으로 치닫게 된다.
기도는 신앙적 관습이나 행위가 아니다.
기도는 주님을 사랑하는 척도요,
그러므로 자발적으로 심령에서 우러 나오는 영적 폭발인 것이다.
화산이 넘쳐 폭발하여 흘러 나오듯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면 뜨겁게 기도의 폭발이 넘쳐난다.
사랑하면 기도하라는 말을 안 해도
스스로, 그리고 자동적으로 나오는 것이 기도다.
누가 연애하는 사람들에게
둘이서 대화 좀 하라고 권면 하겠는가?
그렇게 말한다면 웃기는 일이 아닌가?
기도하지 못함은 주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대화가 끊기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주님을 사랑 한다면 주님을 향하여
우리의 입이 쉴 시간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쉬지말고 기도하라는 말이 가능한 것이다.
사랑한다면 입에 자물쇠를 풀고
주를 향한 속삭임을 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기도생활에 게으른가?
당신은 하나님을 그만큼 적게 사랑하는 자가 분명할 것이다.
- 봉민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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