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가지 재주가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부자로 살지 못하며
현명한 인생을 경영하지 못하는 것은 무슨 연고일까?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 겠다는 것은 피곤함을 줄 뿐이다.
마리아와 마르다의 경우에서 보듯 한 가지 만으로도
족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삶의 지혜일 것이다.
무엇을 잘하는 사람 보다 무슨 일을 하든지
즐기는 사람이 세상을 이긴다.
나는 말하고 싶다.
"신앙생활은 즐기는 것이다"
억지로 하는 일에는 열매가 없다.
기도하기를 즐기고 하나님과 교제를 즐겨야 행복이 임한다.
신앙생활을 부담으로 사명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착취하며 일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은 결코 그것을 바라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쁜 마음으로 그 분의 일을 하기 원하신다.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심은
모든 사람을 노예나 로보트처럼 다스리지 않고
즐겁게 자원하는 심령을 소중히 여기시는 까닭이다.
찬양이 중요 하지만 의무감에 부르는 찬양이 참된 찬양이 되지 못하는 것처럼
억지로 하는 기도는 기도가 아니라 형식주의적인 모습을 하나님께 드러낼 뿐이다.
신앙의 신비는 즐거움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데 있다.
빼기 경영을 하라는 말이 있다.
꼭 필요하고 중요한 일을 해야지
많은 일을 한다고 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인들이 교회에서 왜 피로감을 느끼는가?
많은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께 충성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헌신은 자신도 즐겁고 하나님도 기뻐하실 일을 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 프로그램이 너무나 많다.
그 결과 가정을 돌보지 않고 교회에만 매달려
황폐화 된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도 아니요 주님을 위한 헌신도 아니다.
다만 마르다처럼 바쁨 속에서 허덕일 뿐이다.
광야에서 성막을 짓기 위해 자원하여 즐거움으로
하나님게 예물을 드리던 이스라엘 백성의 헌신처럼
신앙 생활은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오늘날 교회에 가도 즐거움이 없음은
기름 짜듯 억지로 만든 인본주의적 헌신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기쁨이 넘치는 축제의 장소요
주님으로 인한 행복의 처소가 되어야 한다.
많은 프로그램이 우리에게 유익을 주거나
우리의 삶의 변화를 가져다 주지 못함은
즐거움이 없는 강요된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교회의 프로그램을 90%이상 줄이고 부담을 갖지 않고
누구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처소로 만들어야
교회는 부흥하고 놀라운 역사는 거기서부터 출발하게 된다.
어디 기쁨 없는 신앙생활이 신앙생활인가?
그것은 신앙생활이 아니라 노예생활인 것이다.
오늘 우리는 결단해야 한다.
신앙생활을 할 것인가 아니면 노예생활을 할 것인가를...
- 봉민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