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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과의 살아있는 관계여부가 본질이자 전부다!

007 RAMBO 2018. 12. 7. 21:27

본질을 잊지 말아야 한다.


히브리서 10:25절에 보면,

모이기를 폐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다. 


여기서 모인다는 것은 연합을 의미한다. 


그런데 

히브리서 10:25절의 앞 구절들을 보면, 

모이는 것에 대한 당위성이 분명히 전제되어 있다.


히브리서 10:22-24절에 보면,


마음에 예수의 피를 뿌려서,

죄책감에서 벗어나,

맑은 물로 몸을 깨끗이 씻음 받고,

온전한 믿음과, 참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 


또 약속하신 신실한 분을 믿고 의지하며 

흔들리지 말고, 그 신앙을 굳게 잡기 위해... 


그렇게 서로 마음을 쓰며 

사랑과 선한 일을 하도록 격려하기 위해...


말 그대로 

십자가 복음안에서

예수님만 전심다해 사랑하고

그 뜻대로 순종하기 위해 

모이기를 힘쓰라는 의미이다. 


만약 그런 교회공동체라면,

모이기를 힘써야 하는게 당연하다. 


그런 공동체에 붙어있으면

하나님께 온전히 나아갈 수 있게 되고,

떨어져 나가는 것이 오히려 

자기 믿음에 손해일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교회가 교회로써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인본적 기준의 종교적 틀에 갇혀 

스스로 하나님 잘믿는다 착각하면서

되려 이런저런 배도의 흐름 가운데 나아간다면,

그리고 그런 교회들이 다수라고 한다면...


그래서 오히려 그 공동체에 함께함으로 인해,

함께 배도의 흐름으로 나아가게 된다면...


우리 주님은 어떤 말씀을 하실까? 


내 백성아 그 죄에 참여하지 말고 나오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연합 자체가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을 부르신 하나님의 섭리는

철저히 국가적 차원의 부르심이다.


그래서 율법이나 모든 규례와 명령들은

국가적 차원의 집단적 섭리안에서 

이뤄지는 게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이 이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신 후 

십자가 복음이 완성된 후에는

개인적 차원의 영역이 본질이다.


다만 그 복음에 합당한

하나님의 섭리를 잘 이어가기 위해

공동체로 그 역할을 감당해나가는게 

훨씬 더 수월하고 영적인 유익이 있기에 

그런 공동체를 허락하신 것이다.


(그로 인해 하나님의 섭리 또한 

교회적 차원의 영역에서도 함께 일어난다.


특별히 대한민국은 

국가적 차원에서 하나님과 

언약 맺고 건국된 나라이기게

국가적 차원의 섭리도 함께 일어난다.


그리고 그 언약의 당사자가 교회이기에,

국가적 차원과 교회적 차원에

서로 영적인 커넥션이 되어 있는 상태다.)  


그런 의미에서 

신약의 교회공동체에 보내는 사도들의 편지는 

그 교회공동체가 주님이 허락하신 사명을 

더 잘 감당하기 위한 의미인 것이지,

이런 구절 자체만 가지고

교회공동체가 마치 절대적인 하나님의 

구원통로라고 여기는 것은 합당치 않다.


계시록의 일곱교회에 대한 편지 역시,

주님이 허락하신 교회공동체로써의 역할에 

얼마나 충실했냐의 여부를 따지는 것이고,

그로 인한 교회적 차원의 섭리가 임하는 것이지,

이런 말씀들이 교회공동체의 절대적인 존재가치를 

증거하는 것이 아니다. 


본질은 어디까지나 

개인이 십자가 복음안에 온전히 거하고 있느냐, 

즉 주님과 합당한 관계안에 거하고 있느냐 이다.


요한복음 14:6에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다는 말씀은 

개인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이고,


계시록 19:8에서 말씀하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 역시

각자가 주님과의 합당한 관계안에서 

나오는 행실을 의미한다. 


우리는 흔히 

"교회 성도"라는 말을 많이 한다.


여기서 '성도'의 정확한 의미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고 

하나님의 백성이요, 자녀가 된 

모든 거룩한 자"를 통칭한다.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경우 

"교회 성도"라는 말을 함으로써

반드시 교회공동체를 통하지 않고는 

마치 성도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훗날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우리 주님은 너가 어느 공동체에 속해서

무슨 일을 했느냐를 보시는게 아니라

네 중심이 내 마음과 얼마나 합했는지,

그 중심에 의한 열매가 어떠한지를 보실 것이다. 


내가 어떤 교회공동체에서 

이런저런 섬김과 봉사를 했다면,

그 교회공동체에 속했기에 

그 섬김과 봉사가 의미 있는게 아니라,


그 개인이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속에서 나온 행위였기에

하나님앞에 카운트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시대의 영적 현실이 

어떠한지를 분명하게 인지한다면,

마지막 때 사람의 미혹을 주의하라는 

말씀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한다. 


또 내가 얼마나

주님과 살아있는 관계안에

거하고 있는지를 반드시 돌아봐야 한다. 


성경이 전제하는 참된 연합은 

진리안에서의 거룩한 연합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죄된 흐름에서 철저히 구별되어서, 

온전한 중심으로 주님앞에 서야 한다. 


그래서

육적으로 연합하는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영적인 차원에서는 이미 그리스도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연합되어 있는 것이고, 

같은 하나님의 지체로서 각자의 자리에서 

같은 목적(뜻)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면,

비록 육은 떨어져 있더라도 

이미 연합되어 주님과 한 몸 한 뜻을 

이뤄나가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2장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몸과 지체의 각 부분에 대한 구절이 

바로 그러한 영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져 육적으로 

눈에 보이는 건물안에 모여서 

종교적 틀에 맞게 생활하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그런 교회라고만 생각한다. 


분명한 것은

스스로 정체성을 주님안에서 바로 찾고,

주님 뜻 따라 산다면, 그 사람이 바로 교회다.


그리고 그렇게 중심이 온전한 

개인(교회)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고

그 공동체가 하나님 뜻안에 온전히 거한다면 

머리되신 예수님의 지체가 되는 공동체인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육적인 차원을 넘어서야

영적인 차원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보인다.


지금의 교회공동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제대로 된 역할을 못하기에 

돌들로 소리치게 하시는 것을 본다.


주님 오심이 가까운 이 때에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연합'하는 것보다 '구별'되는 것이다.


'판단'하지 않는 것보다 '미혹'되지 않는 것이다.


'분열'되는게 싫어서

'구별'되지 못한 채

배도의 흐름에 동참한다거나...


'판단'할까봐 두려워서

'미혹'된 흐름을 용인하고 동참해버린다면

그런 인생만큼 비참한 인생도 없을 것이다.  


이 시대 수많은 교회들이

연합(분열) 때문에... 판단 때문에...

배도와 미혹의 파도에 휩쓸려간다.ㅠㅠ


지금 자기자신을 돌아보고,

속해 있는 공동체가

배도의 흐름을 타지 않고,

온전한 하나님의 섭리안에 거하는 공동체라면,

그 공동체에 속해 있는건 별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만약...

자기 영혼을 모두 공동체에 내맡긴 상태에서

그 교회가 배도의 흐름으로 나아간다면,

개인이 그 교회적 차원의 배도에 동참한 상태에서 

교회적 차원의 하나님의 섭리가 진행되는 것이다. 


마지막 때 

알곡으로 추수될 구원의 역사는

모든 차원의 하나님의 섭리안에 

온전히 거하는 자들이 해당된다. 

참고: http://blog.daum.net/bk1981/20973


그래서 본인의 영혼을 위해서라도

결단해야 할땐 결단함으로 

그 죄에 함께 참여하지 말고

빠져나오는 것이 지혜로운 선택이다.


이미 교회를 나온 상태라면,

다른 교회 찾지 못해서 불안해하지 말고,

지금 내 중심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지,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한지를 점검하고,

그렇지 못하다면 그걸로 불안해하라. 


여전히 육적인 공동체만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구원통로라고 생각된다면,

이글은 그져 기존 공동체를 꺠부수기 위한 

저열한 의도의 글로밖에 생각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온전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아니라,

자기안에 내재된 종교적 기준, 

딱 그 안에 국한된만큼의 

하나님의 섭리만 역사할 것이다.


주님오심이 가까운 마지막 때, 주님은 

스스로 교회로써의 정체성을 

갖고 사는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지금은 알곡과 쭉정이가 나뉘어지는

마지막 중의 마지막 때이다. 


분명한 것은

우리 주님 다시 오실 때는

개인이 자기 영혼을 교회에 내맡기고

그 교회가 배도에 동참한게 아닌 이상,

철저하게 개인적 차원에 의한

알곡 추수가 이뤄질 것이다.


즉, 어느 교회공동체에서는

많은 이들이 들림받게 될 수 있지만,

어느 교회에서는 단 몇 사람만,

아니면 한 사람도 들림받지 못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겸비함을 갖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매일 점검하는 자가

진정 이 시대에 복된 자들이다. 



- 엘샤다이


http://blog.daum.net/bk1981/209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