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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의 복을 놓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007 RAMBO 2018. 9. 10. 15:22

첫째, 누구도 찬양에 대해서 배우지를 못했기 때문이다.

분명 다윗은 찬양(예배)의 복을 통해 

시대적 복을 받은 증거가 있지만,

우리는 거기에 대한 신학적 성경적 배움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예배의 핵심이 되는 

찬양의 언약과 복들을 다 놓치고 있다.

그러면서도 예배를 회복하자는 말을 자주 들을 때 

조금 아이러니컬한 감이 든다.

신학교에서도 가르쳐야하고 

교회에서도 모든 성도들에게 

바른 찬양의 언약을 가르쳐야 한다.

다윗은 그의 별명이 

'이스라엘의 노래 잘 하는 자(삼하23:1)'

라고 스스로 고백하고 있다. 


찬양의 예배적 복을 누리고 있다는 뜻일 게다.
그렇지 못할 때 음악의 전문가인 사탄은 

계속 가인의 길로 가도록 우리를 속일 것이다.

둘째, 찬양은 왜 불러야하며, 어떻게 부르며, 

부를 때 어떤 역사와 복들을 받게 되는지에 대한 

성경적 언약을 배우지 못함으로


음악이 가진 음정, 박자, 빠르기 같은 

음악적인 법에 자연스레 매이게 되는데, 

그것을 찬양의 모든 이유와 방법으로 삼는 것이
교인과 찬양대의 현실이다. 


그래서 음정, 박자, 빠르기 같은 것을 

조금이라도 읽는 자는 찬양을 잘하는 자요,
거기에 약간의 성악적 기능이 있으면, 

더더욱 찬양을 잘하는 자로 인정을 해버린다.

반대로 그런 능력과 기능이 없는 자들은 

아예 찬양과는 별 인연(?)이 없는 것처럼 

찬양을 무시하거나 무관심하게 일관하며
형식적으로 끌려 다니는 입장에 처한다. 


더욱 가관인 것은 

약간의 기능을 가진 자들은 

아예 찬양을 개인의 인기와 명예,
또는 경제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 실정이다. 


참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며 

그 이름을 망령되이 하는 짓이리라.
그래서 더더욱 찬양의 언약을 배워야 한다.

누구도 예배를 드리면서 

왜 찬양순서가 이렇게 많을까 

의아하게 생각해본 사람은 적을 것이다.

참된 배움도 없이 따라 부르는 중에 

그냥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사실 예배순서를 보면 찬양 일색이다.
한 순서가 끝나면 바로 찬양하도록 짜여져 있다. 


여러가지 순서가 원활하게 잘 돌아가도록 

그렇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많은 순서를 진행하는 동안 지루하고 따분하기에 

기분을 전환할 의도로 그렇게 한 것도 분명 아니다.


찬송이 그렇게 많이 불려져야 될 

성경적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사43:21, 엡1:3-14, 계19:5, 시27:4-6, 시69:30-31, 시100:1-4).

그래서 기독교를 

찬송의 종교(?)라고도 하지 않던가?

그렇다. 

한 순서가 끝나면 모든 회중이 입을 모아 

구원의 주님을 찬양하고 또 한 순서가 지나가면 

다시 마음을 모아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 

예배의 핵심이다. 


그런데 그런 예배의 중심이 되는 찬송이 

별 가치 없이 불려지고 있다는데
예배 회복의 심각성이 있다는 말이다. 


다윗은 찬양의 가치가 황소를 드림보다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했다(시69:30-31) 


동물제사가 일색이었던 구약시대에 

다윗은 찬양의 엄청난 비밀을 발견하고 누린 것이다.

그래서 시27편에는 자신의 소원이 

왕궁보다는 성전에 사는 것이라 했다. 

거기서 즐거운 제사, 

곧 노래하여 여호와를 찬송하겠다고 했다.

그가 그렇게 찬양을 좋아하게 된 배경이 무엇일까? 

시22:1-3에 다윗은 하나님을 찾기에 급급하다.

하나님이 자신을 버렸다고 까지 생각했다.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찾았지만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찬송 중에 하나님을 만났다고 간증하고 있다.

예배의 축복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그래서 시22:26에 하나님을 찾는 자들은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했다.

그때 하나님을 만날 뿐 아니라 

마음까지 살게 되는 복을 얻게 된다고 했다.

그렇다. 

인생 질병 80%가 심인성(心因性)이라고 하는데 

마음과 생각이 치료되는 능력과 역사가 

찬양 가운데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는가? 


어찌 찬양의 능력이 

마음만 치료하는데 그칠까?

다윗은 삼상16:23에 육신과 정신, 영혼까지 치료되는 

종합적 치료의 능력을 간증하고 있다(상쾌하여- 낫고- 악신은 떠나더라).

참으로 우리의 믿음이 아름답게 잘 자라게 하는 

치료의 복이 찬양 안에 있다는 말이다.

또 찬양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는 힘이 있다. 


시49:1-4 "...수금으로 나의 오묘한 말을 풀리로다.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를 기쁘시게 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큰 은혜가 

바로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복이다.

그래서일까? 

찬양대가 설교 바로 전에 찬양을 드리는 것은 

의미 있는 순서라 생각된다.

한편 찬양하고 있는 동안 

밭의 소산(산업)에 하나님의 복이 임한다(시67:5-7).

또 행16:25-34에 바울이 감옥에서 찬양할 때 

엄청난 기적이 일어난 사실이나
시40:3에 다윗의 찬양으로 

많은 불신자들이 두려워하여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전도의 역사들은 

모두가 찬양 안에 감추어 놓은 복과 은혜들이다. 


그런 귀한 찬양을 부르면서도, 

모르면 낙심하고 사탄에게 이용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배시간에 그렇게 자주 찬양할 수밖에 없고, 

바로 그 시간에 하나님은 우리와 관계된 모든 곳에 

엄청난 복들을 여호와 이레로 예비하시는 것이다. 


이런 찬양의 비밀이 있기에 

다윗은 하루 종일 찬양한다(시35:28)고 했으며
시104:33에 평생토록, 생존하는 동안 찬양한다고 했다. 


하나님은 그래서 호흡이 있는 자는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했다
이것이 복의 비밀을 아는 자의 모습이다. 


성경에는 찬양 간증들로 충만하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에는 찬양 간증이 없다.

이제부터 찬양의 비밀을 가지고 

참된 예배를 회복하는 은혜를 누려야겠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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