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교계에는 참 좋은 프로그램들이 많습니다.
그 프로그램들이 형성된 문화부터가 다릅니다.
지금은 아주 많이 퇴색 되었지만
그래도 미국문화는 기독교라는 바탕 위에 형성된 문화입니다.
그 문화에서 형성된 프로그램들이라 참 우수합니다.
그렇게 우수한 프로그램들의 혜택을 받으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미국교인들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미국교회의 지도자들은
중국의 지하교회 교인들을 우러러봅니다.
물론 그 교인들은 미국교계에 넘치는
'그 좋은 프로그램들'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중국을 탈출해 미국에 오게 된
그 교인들은 그 프로그램들을 배우려고 하는데
막상 그 지도자들은 오히려 그 교인들에게 배우려고 합니다.
많은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은 미국 교인들에게
고상한 모습과 앞선 지식은 있어도
'신앙' 이라는 측면에서는,
온갖 핍박 가운데 신앙을 지킨
그 교인들의 신앙을 앞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많은 프로그램들도 결국은 신앙을 위한 것인데,
프로그램으로는 핍박이라는 연단을 통해
성숙한 신앙을 낳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미국교인들이 중국의 지하교회 교인들, 북한 성도들,
이슬람권의 그리스도인들 등 핍박 가운데 신앙을 지키는 성도들을 우러러 보게 됩니다.
사실 미국교인들이 북한, 중국, 이슬람권 등에서
핍박 가운데 신앙을 지키는 성도들만 우러러 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놀랍게도 한국 교인들도 우러러봤습니다.
생각해 보면 한국 교회에는 매일 같이 강행되던 새벽 기도,
매주마다 빠짐없이 진행되는 철야기도,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께 맡기고 바치는 거액의 헌금,
죽으면 죽으리라며 도전하는 금식 기도,
목청이 터지라고 부르짖는 통성기도,
예배 후 당연시 제공되는 무료 점심 등등의 열정이 있습니다.
미국교회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열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예를 들어 은혜 충만한 기도원을 옆에 두고
미국까지 기도원을 찾아 태평양을 건너 옵니다.
사실은 미국교인들이 한국의 기도원을 찾아 태평양을 건너야 하는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제가 한때 몸담았던 미국교회의 목사님께서 한국을 방문하신 적이 있는데,
몇몇 교회들을 둘러 보고 돌아오셔서는 감탄과 칭찬을 쑫아내시며
한국 교회를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에 강조를 거듭하셨습니다.
제가 그 교회에 출석하면서 그 목사님께서
그렇게 감탄하고 칭찬하고 강조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습니다.
많은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은 미국교인들에게
고상한 모습과 앞선 지식이 있어도 '신앙' 이라는 측면에서는,
위에서 예로 들어 드린 열정으로 덤벼드는
한국 교인들의 신앙이 감탄스러울 뿐인 것입니다.
그 많은 프로그램들도 결국은 신앙을 위한 것인데,
프로그램으로는 한국 교회에서 나타나는 수준의
열정이 있는 신앙을 낳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미국 교인들이 열정이 넘치는 한국 교회를 우러러 봅니다.
아이러니입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미국 교계의 우수한 프로그램들을 배우고자 전전긍긍하는데,
그래서 어떻게 좋은 프로그램이라도 하나 입수하게 되면
선전을 하는 등 과잉 반응을 나타내는데,
막상 미국 교계에서는 한국 교회의 열정을 부러워하고
핍박 가운데 신앙을 지키는 성도들을 우러러 봅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수한 프로그램을 통해 고상한 모습과 앞선 지식이 있어도
기본적으로 열정이 결여된 신앙과
비록 투박해 보이더라도 열정이 있고
강한 연단을 통해 성숙한 신앙을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신앙이 보다 나은 신앙입니까?
한마디로
"어떤 신앙이 더 성경적입니까?"
"하나님께서 어떤 신앙을 더욱 기뻐하시고 인정하시겠습니까?"
"어떤 신앙을 가진 사람이 심판날 하나님께 더 큰 칭찬을 받겠습니까?"
"어떤 신앙이 증명된 신앙입니까?"
이제 답이 나오실 것입니다.
열정이 결여되고 연단을 통한 성숙함이 없는 신앙은,
직선적으로 말씀 드려서, 본받을 만한 신앙이 아닙니다.
아무리 고상한 모습과 앞선 지식이 있어도
제대로 된 신앙이 아닙니다.
물론 연단을 통한 성숙함과 열정 위에
고상한 모습과 앞선 지식이 더해진다면 금상첨화입니다.
그러나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비록 고상한 모습이 없고 앞선 지식이 부족하더라도
열정이 있고 연단을 통한 성숙한 신앙을 택해야 할 것입니다.
그 신앙이 참 신앙입니다.
물론 프로그램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프로그램이 있으면 많이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단지 중요한 사실 하나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삶 가운데 나타나고 '연단',' '광야(생활)' 등으로 일컬어지는
(영적)훈련(과정)을 가볍게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연단은 하나님께서 직접 운영하시는 최고인 프로그램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인물들이
신앙의 본이 되기까지의 과정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처럼 좋은 프로그램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프로그램으로 다듬어진 신앙이 아니었습니다.
강한 연단을 통해 성숙한 신앙이었습니다.
요셉의 경우가 좋은 예입니다.
노예 생활 가운데 그리고 옥중 생활 가운데
어떠한 프로그램도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는 우리들은 그 노예 생활과 그 옥중 생활이
다 하나님께서 직접 운영하신 '연단'이라는 프로그램이었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최고의 프로그램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삶 가운데 나타나는 '연단'이라는 과정을
가볍게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비록 처한 상황에 프로그램이 없더라도
또는 형편상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을 수 없더라도
하나님께서 직접 운영하시는 '연단'이라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우리는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 과정이 억울하고 고통스럽기는 해도 축복입니다.
그래서 보면,
연단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여건이 되어 좋은 프로그램들의 혜택을 받는 사람들을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좋은 프로그램의 혜택을 아무리 많이 받았어도
연단이 없었던 사람들은
연단을 받은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우러러 봅니다.
그러므로
삶 가운데 나타나는 ‘연단’(이라는 과정)을
가볍게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알고 보면 '연단'만큽 좋은 프로그램이 없습니다.
'연단'은 하나님께서 직접 운영하시는
최고의 프로그램입니다.
출처 : 딘스스터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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