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가장 전화를 많이 받은 날입니다.
40여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자매들이 다 전화를 걸어주어 위로를 했습니다.
미국에서 언니가 전화하면서 jane집사님의 천국 입성에 대하여 말했습니다
둘째언니도 음식 등 여러 조언을 주었고 음식을 실제 만들어 보내주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며 기도에 힘쓰는 막내동생은
아무 일도 안 하는 가운데에도 더 많은 일을 하는 것이며
본인이 안 하면 누군가 그 일을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하여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며
사람을 연단시키며 그 기간을 채우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동생의 말은 당하는 영성,
십자가의 영성을 기억나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영성을 보게 되면 인기 없는 영성입니다.
왜냐하면 연약하고 무력하고 기다리고 당하는 영성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철저하게 "망하고 부인 당하는 영성"
저주받은 삶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속사람이 이러한 영성을 추구한다고 한다면
자아는 더욱 깊은 갈등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겉사람이 가장 싫어하는 영성이기 때문입니다.
겉사람과 원수가 되는 영성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영성을 통하여
예수님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이루어 내셨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나누어 보면 대개 세 부분으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1) 처음에는 가정에서 가장의 사명을 감당하면서 준비하는 기간이었습니다.
목수의 아들로서, 또한 가난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책임을 감당해야 할 부분을 성실하게 수행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조용히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셨습니다.
2) 두 번 째로 하나님의 때가 오자 예수님은 갈릴리 바닷가로 나가셔서
3년 동안의 공생애 기간을 시작하셨습니다.
이제 무엇인가를 "행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길을 미리 예비한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셨고
3년 동안의 공생애 기간을 시작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의 출현도 그들에게는 놀라운 일이었지만
예수님의 등장은 유대 종교계를 잔득 긴장시켰습니다.
그것은 그 분이 "행하시는 일"이 그들과 같지 아니하였고
여느 종교 지도자와 달랐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분이 말씀하시는 일이 서기관이나 율법학자들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으로부터 부자들까지, 또한 평범한 어부로부터 종교 지도자들까지
모두가 예수님에게로 관심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5000명을 먹이는 사건, 죽은 자를 살리는 기적,
말씀의 권세, 성경을 새로운 안목으로 보게 하시는 능력,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 등 그 분이 행하시는 모든 일들이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3) 그러나 세 번째의 기간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핍박받으시고, 피해 다니시고, 고난 당하시고
오해 "당하시는 기간"이 오게 된 것입니다.
특별히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철저하게 예수 운동을 말살시키려는 계획을 세웠고
사사 건건 예수님을 괴롭히고 협박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당하기만 하는" 예수님을 보고 가룟 유다는 깊은 실망을 합니다.
자신이 메시아로 따라다니던 예수님에게서
전혀 능력을 기대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마음에 사단은 "예수를 팔 생각"을 심어줍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시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유대인 관원에게 붙잡히셔서 종교재판을 받게 되십니다.
이제부터 예수님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닐 수 없는 고난을 당하시게 됩니다.
마치 베드로의 마지막 인생이 순교의 길이 되리라고 예언하신 것처럼
예수님 자신도 더 이상 스스로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수난을 받게 되십니다.
이러한 영성은 예수님의 중요한 영성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행하는 것만 중요한 영성이 아니라
당하는 영성도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하기 때문에 가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당하는 가운데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수난 당하는 동안 누군가가 무엇을 하도록 기다립니다.
이것이 내가 무엇을 하는 것보다 더 큰 영성이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군가 무엇인가를 행하도록 허락한 시간도 중요하지만
순종하며 기다리는 것, 당하며 기다리는 것도 깊은 영성이며
그리스도의 영성의 깊은 면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하는 영성은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피하고 지나가는 영성입니다.
무모하게 당하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하는 동안에도
하나님의 약속 가운데 무엇인가를 행하고 계셨습니다.
그 분이 당하는 것조차도 강력하게 행하고 있는 것의 일부였습니다.
바로 기다림과 순종을 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침묵도 말하는 것 이상으로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감은 우리들이 참으로 자유롭게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언제나 큰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감,
업적을 남겨야 한다는 마음의 부담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입니까?
이것은 자기 영광을 위하여 나오는 부담감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쉴 때, 당할 때
아니면 기다릴 때 큰 일을 하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주님이 무엇인가를 하시기 위하여
우리가 기다려야 한다면, 당해야 한다면
우리는 순종하는 것이 영성입니다.
기다리며 당하면서도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다면
이것은 참으로 큰 영성일 것입니다.
약속을 믿으며 쉬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약속 안에서의 성취를 기다리며
소망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동안 나도 열심히 일했습니다.
남이 따라할 수 없을 정도로 따라다녀도
힘이 들 정도로 열심히 부지런히 일했습니다.
요사이 하나님은 그때 열심으로
결코 돌려보내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새 일이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 주님은 완벽하게 시간이 필요했고
사람이 필요하였습니다.
그 새 일은 어떤 일이 될 지 알지 못합니다.
주님이 가장 영향력있는 메시지를 준 것은
부지런히 일할 때 보다도
십자가에서 당하던 6시간이었습니다.
33년의 생애 중 십자가의 6시간이 없었다면
무덤에서의 3일이 없었다면
그가 행하시던 모든 일이 온전해 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가 당하시면서 침묵하시면서 위대한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부활의 아침이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이 당하시면서도 하나님의 큰 일을 이루셨다는 것,
이 단순하면서도 위대한 진리가
저에게 자유함과 평안을 주는 아침입니다.
- 윤남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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