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것은
심리적 허기 때문이다.
심리적 허기는 밀어붙이기 식 강공 다이어트로는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식욕이 조절되지 않고 요요현상만 일으킨다.
따뜻한 대화가 곁들여진 맛난 식사가
오히려 삶의 만족감을 주며
지방을 태울 준비를 갖추게 한다.
다이어트의 시작은
전투가 아닌 관계의 회복이다.
오랜 세월, 인류를 생존케 한 힘이 무엇이냐고 필자에게 묻는다면
첫째는 후회해도 끊임없이 갈망하는 남녀 간의 사랑,
둘째는 감성적으로는 밑지는 장사이나
절절이 내리 사랑을 유지시키는 여성의 모성애,
그리고 마지막으로 '적게 먹어야지' 라고
수백 번 마음먹어도 줄어들지 않는 식욕 아닐까 싶다.
싱글족의 증가나 출산율 저하를 보면
이성 간 사랑과 모성애는
사회 심리적 조정 기간을 거치고 있다 생각되는데,
식욕은 그 욕망의 질주를 멈추지 않고 있으니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이 많음에도
오히려 비만 인구 비율은 늘어만 가고 있다.
30대 초반 컨설팅회사에 근무하는 미혼 여성이
의욕 저하, 불면 등 스트레스 증상으로 필자의 클리닉을 방문했다.
상담 중 "복부 비만이 생기지 않았느냐"라고 묻자 깜짝 놀라며
"선생님, 배 나온 게 보이세요?" 라고 반응한다.
"보여서 아는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를 받으면
우리 뇌는 위기 상황이라 판단해
똑같이 먹고 운동해도 부지런히 지방을 배에 축적합니다" 라고 설명했다.
이후 치료를 통해 스트레스 반응이 경감하니
운동량을 줄였음에도 허리 사이즈가 원래대로 돌아갔다.
단순한 에너지 공급-소비 공식에서 벗어나는
이런 생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비만의 이유를 '먹을 것이 많아져서'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안 먹으면 그만 아닌가.
내 마음의 생각과 몸의 반응이 백퍼센트 내 것이고
내 통제하에 있다 생각하나 실상 그렇지 않다.
20세기 심리철학연구의 주요 성과 중 하나가
'내 마음이 내 것이 아닌가 봐'다.
우리 내부의 무의식적 욕망과 타자(他者)의 욕망
(언어와 사상으로 우리를 감싸고 있는 상대방과 사회 시스템의 요구)을
부지불식간 수용해 그것을 내 선택으로 인식하며 살고 있다.
과식이 몸에 해로운 줄 알면서도 참지 못하는 것은
나의 이성적 선택이 아닌 것이다.
욕망의 요구에 강력한 이성의 의지도 허무하게 무너지고 만다.
비만은 심리적 허기에 대한 음식 중독이다
식욕조절센터는 감성 시스템의 핵심 중추인 시상하부에 존재한다.
밥을 먹으면 포만감 신호가 뇌에 전달된다.
시상하부가 포만감 신호만으로 식욕을 조절한다면
폭식이나 비만은 없었을 것이다.
배가 부른 신체적 포만감 이외에
심리적 포만감, 즉 '고생하는 만큼
충분한 심리적 만족감을 누리고 있는가'
하는 심리보상 시스템의 신호를 함께 받는다.
밥을 먹고 나서 '배부르다.
그리고 내가 사는 삶 또한 근사해'라며
양쪽 신호가 다 긍정적이어야
식욕에 대한 욕구 스위치가 꺼진다.
그러나 '많이 먹었더니 배만 엄청 부르네.
그런데 이건 내가 원했던 삶이 아니야'라고 생각되면
신체적 허기는 채워졌으나 심리적 허기는 지속돼
배가 터지도록 부른데도 삶의 허전함을 보상하기 위해 더 먹게 된다.
현대인의 전염병인 비만은
심리적 허기에 대한 음식 중독인 셈이다.
내성 때문에 마음의 보상을 위한 음식량이 점점 늘어난다.
그러다 보면 몸과 마음이 다 상하게 된다.
굶기만 하는 다이어트는 백전백패다.
날씬한 몸매와 건강한 몸을 위해 하는 다이어트건만
생존을 담당하는 뇌 안의 스트레스 시스템은
음식물이 입 안으로 적게 들어오면 보릿고개가 왔다고 판단해
방어 시스템을 작동한다.
스트레스 호르몬을 방출해 같은 양을 먹어도
이전보다 더 에너지를 지방 형태로 복부에 축적하고
닥치는 대로 먹도록 식욕 또한 증가시킨다.
이것이 요요현상의 이유다.
아이러니하게 아름다움과 건강을 위해 다이어트를 하건만
우리 뇌는 이것을 위험 신호로 받아들여 몸을 더 지방화한다.
굶으면 근육부터 에너지로 쓰이는데
다시 채우는 것은 지방이니
몸의 지방과 단백질 비율의 균형이 엉망이 된다.
이러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상황에선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백해무익한 담배를 끊기 힘든 것은
주성분인 니코틴이
심리적 허기를 약물학적으로 보상하기 때문이다.
금연을 했을 때 살이 찌는 이유다.
불안 및 만성 통증으로 필자를 방문한 유명 연예인,
3년 전 담배를 끊고 나니 몸 컨디션이 더 안 좋아졌다고 한다.
폭주가 문제라 생각해 오늘부터 술도 끊으려고 한다고 말하는데,
술만 먹으면 그 순간은 아픈 곳이 없어진다고 한다.
술 끊는 게 더 스트레스이니 과음 말고 조금 드시라고 말했다.
밀어붙이기 식 생활습관의 변화는 마음과 몸을 더 망가뜨린다.
다이어트를 생각하는가.
우선 체중계를 버리자.
체중계에 오를 때마다 나오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지방을 더 축적시킨다.
다이어트는 심리적 허기
즉, 내 삶의 심리적 보상을 어떻게 잘 느끼며 사느냐의 문제다.
술, 담배, 쇼핑 등은 일시적으로 삶의 보상을 일으키나
본질이 아니고 건강한 삶을 망가뜨린다.
고생해서 성취하는 것과
그 성취를 위해 희생한 나의 감성을 위로하는 것이
독립된 다른 프로세스라는 이해가 필요하다.
미국에서 심장질환 사망자가 급속히 증가하기 시작한 20세기 중반,
필라델피아 지역에서 위험 요인을 찾는 역학조사가 시행됐다.
비만, 고지혈증 등이 요인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로세토란 마을은 결과가 특이했다.
이탈리아의 한 마을이 통째로 이민 온 곳이었는데
다른 곳보다 훨씬 칼로리 섭취도 많고 비만 환자도 많은데
심장병 발생 및 사망률이 오히려 낮았다.
이유가 무엇인지 추가 연구가 진행됐다.
그곳 사람들은 관계가 끈끈하고 좋았다.
일주일에 하루는 파스타데이처럼
온 마을 사람들이 음식을 해 먹고
한 잔 술을 나누며 즐겁게 파티를 즐겼다.
누군가 경쟁력 있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면
쓸 데 없는 이야기하지 말라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그곳도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키 위해
사람들 삶이 각박해지면서 심장병 발생률이 증가했다.
날씬해지기 위해서 피트니스 센터도 가고
더 좋은 맨션에서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말이다.
다이어트의 시작은 칼로리 제한이 아닌 관계의 회복이다.
나를 따뜻하게 바라봐주는 지인과의
유쾌한 수다와 맛난 음식을 즐기자.
배는 통통할지라도 마음은 꽉 찬 만족감으로 살자.
삶의 허기가 충족될 때
적은 운동과 약간의 식이조절만으로도
지방은 잘 타 들어간다.
글·사진 - 윤대현 /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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