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성경을 읽게 되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단어가 적지 않게 나온다.
시험이라는 단어도 그중의 하나일 것이다.
시험이라는 말의 헬라어는 ‘페이라조’이다.
시험이라는 말의 뜻은, 말 그대로 ‘테스트를 하다’라는 의미이다.
시험이라는 단어의 사전적인 의미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죄에 대한 유혹이나 하나님에 대한 배교를 포함하는 인간의 테스트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시험에서 합격하면 행복의 문에 들어서지만,
이 시험에 불합격을 하면 고난과 불행에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당신에게 닥치는 시험을 잘 알고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인류에게 처음 닥친 시험은 아담과 하와의 경우이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선악과를 따먹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허락하셨지만,
아담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써,
시험에 걸려 넘어져서 아담이후로 모든 인류가 죄의 대가를 지불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시험에 걸려 넘어지다’는 말은 ‘죄를 짓다’라는 단어와 동의어가 되었고,
죄를 짓는 것은 고난과 역경에 빠지는 상황을 말한다.
그러면 왜 시험이라는 말이 유혹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가?
유혹의 목적은 죄를 짓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를 짓도록 꼬드기고 유혹하는 것이 바로 시험을 하는 것이다.
아담의 배반사건 이후로 모든 인류는 탐욕과 방탕을 추구하는 타락한 옛사람의 죄성을 지니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죄성을 간파하고 죄에 걸려 넘어지도록 유혹하는 이가 등장하였으니,
그가 바로 바로 사탄이다. 그래서 사탄의 또 다른 이름이 ‘시험하는 자’이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며 준비하였을 때,
사탄이 3가지 유혹으로 예수님을 시험하였는데,
이 때 성경은 사탄의 이름을 ‘시험하는 자’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모든 유혹이 그렇듯이 달콤하기 이를 데 없다.
사탄은 예수님에게 천하만국을 다 보여주고,
자신에게 절만하면 죄다 주겠는 제안을 하듯이 말이다.
세상의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을 주겠다는 제안은,
언제 들어도 귀가 솔깃한 유혹임에 틀림없다.
예수님이야 이 시험을 거들떠보지 않았지만,
타락한 옛 모습의 육체를 지니고 탐욕과 방탕을 추구하는 우리로서는,
사탄이 제안하는 유혹이 꿀처럼 달콤하게 들리기 마련이다.
사탄이 유혹하는 죄는 여러 가지이지만,
사람들이 가장 쉽게 넘어가는 죄가 바로 육체의 탐욕과 방탕을 추구하는 것들이다.
돈을 사랑하며, 자기의 의를 드러내어 교만하게 만들고,
술과 음란, 불륜 등의 육체적인 쾌락이 우리가 넘어지기 쉬운 가장 취약한 죄이다.
이처럼 죄를 짓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지만,
죄를 짓게 되면 끔찍한 대가를 지불하게 되어 있다.
왜냐면 하나님은 세상을 지으시고 우주를 다스리시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면서,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를 지은 사람들에게 벌을 받도록 설계하셨기 때문이다.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신11:27~29)
그렇다면 죄를 짓는 것이 왜 고난과 역경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게 되었는가?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추구하는 자에게 영혼과 삶을 축복해 주시고,
반대로 자신의 뜻을 배반하고 죄를 짓는 사람들에게 영혼과 삶에 저주를 내리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저주는 대략 두 가지이다.
하나는 영혼이 영원한 지옥의 불에 던져지는 것이며,
나머지는 이 땅에서 불행에 빠져 고통스럽게 사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악한 영은 죄를 짓게 하여 불행에 빠뜨려 고통스럽게 하고
영혼을 지옥에 던져지게 만드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인생을 사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극심한 가난이나 불치병, 사람들과의 갈등도 고통스럽게 하지만,
가장 끔찍한 저주는 영혼의 기쁨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의 즐거움을 쫓아 살지만,
육체의 쾌락을 추구하는 삶은 바닷물을 마시는 것처럼 갈증을 증폭시킬 뿐이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1:2)
그렇다면 죄의 유혹을 물리쳐서 시험에 들지 않은 사람들은 어떤 축복이 기다리고 있는가?
죄의 유혹을 물리치려면 죄와 싸워 승리하여야 한다.
이런 사람은 예수님은 이기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계2:26,3:21)
이기는 사람은 만국을 다스리는 열쇠를 주고(계2:26),
예수님의 보좌에 앉히는 영광을 주겠다고 약속하셨다.(계3:21)
즉, 죄와 싸워 이겨서 시험을 이기는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자격을 얻을 뿐 아니라,
이 땅에서 범사가 잘되고 건강을 누리는 축복을 덤으로 얻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항상 믿음을 테스트하신다.
왜냐면 하나님은 믿음이 있는 자를 기뻐하시고 자녀로 여기시며
천국에서 영원히 같이 살고 싶어 하시기 때문이다.
이 시험에 합격한 자들에게는 영혼이 잘되고 평안한 축복이 주어지지만,
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시험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불행에 빠져 고통스런 삶을 살아야 한다.
물론 죄를 낱낱이 고백하고 철저하게 회개한다면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다시 받아주시겠지만
이미 저지른 죄의 대가까지 무효로 하시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도 한 순간의 방심으로 죄를 짓게 되면
뼈아픈 고난을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 허다하다.
다윗도 평소에는 하나님이 총애하셨지만,
밧세바와의 간음과 우리아를 죽인 살인사건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러야 했던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다윗이 깨끗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자,
하나님은 예전의 사랑으로 다시 품어주셨다.
그러므로 이 땅에 사는 동안에 달콤한 죄의 유혹이
끊임없이 당신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것이다.
때로는 엄청난 돈으로, 때로는 성적 유혹으로,
때로는 짜릿한 육체의 즐거움으로 당신에게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이 시험의 결과는 당신의 영혼과 삶의 운명을 결정지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 시험에서 합격하여 동행하는 삶을 원하시지만,
악한 영은 당신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질투하고 시기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행에 빠뜨려 지옥의 불에 던져 넣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달콤한 유혹은 믿음을 달아보는 테스트와 같은 의미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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