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열·서송희 부부의 심리학 콘서트 ‘중년, 나도 아프다’](136)
애쓰며 살아왔는데 왜 억울한 걸까?
우리 모두는 자기가 하고 싶었던 것을,
참고 못했던 것을
다른 사람이 자연스럽게 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언짢아지고 화가 난다.
그리고 그 사람이 미워진다.
참고 살아왔던 세월이
억울해지는 거다.
봄기운이 제법 따뜻하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가볍고
자연의 색깔 역시 경쾌하다.
시각과 촉각이 우리 몸을 자극하듯
오감이 세상을 향해 열릴 때
마음도 충만해지는데,
어쩐지 마스크를 쓴 우리의 모습은
이 봄을 거부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기분 나쁜 불청객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쓴 마스크가
왠지 세상으로부터도 그들 자신을
격리시키는 것 같아 보인다.
새로 입사한 사원의 거슬리는 행동들
검은 마스크를 쓰고 연화씨가 왔다.
회사 일이 많아
약속시간에 맞추기 힘들었다며
숨을 헐떡인다.
그 모습이 검은 마스크 때문인지
시간의 촉박함 때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의 모습은 따스한 봄날과는 거리감이 있었다.
“오는데 어떠셨어요?”
“회사에서 겨우 빠져나왔는데
황사도 심하고 길도 붐비니 숨 가쁘네요.”
“여러 가지가 힘들었군요.”
“창밖으로 황사가 잔뜩 낀 하늘을 보니
딱 제 마음 같았어요.”
“답답했겠어요.
그런데 왜 그렇게 느꼈어요?”
“뭔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제 마음에도 황사가 낀 것 같았어요.”
마스크를 벗은 입가에 한 손을 얹으며
그녀가 생각에 잠긴다.
잠시 후 “선생님, 제가 참 곰 같아요”라고
한마디 툭 내뱉으며 침묵을 깬다.
의아했다.
오히려 지적인 외모라고 생각했기에
나는 더 놀랐다.
“곰이요? 자신을 폄하하는 말같이 제게 들리는데 어떠세요?”
“네. 맞아요. 요즘 자꾸 그런 생각이 들어요.”
“괴롭겠어요. 그런 생각들은 주로 어떤 때 드나요?”
“회사에서 동료들과 있을 때도 그렇고, 가끔 집에서도 해요.
오늘도 회사에서 그랬어요.”
“좀 구체적으로 얘기해 줄 수 있나요?”
일의 특성상 그녀의 사무실 동료들은
남자보다 여자들이 많다.
연차가 높은 연화씨는 일만큼은
자타가 인정하는 실력자다.
남자 상사나 동료들도
그녀의 일처리 능력에 대해선 늘 신뢰한다.
그렇듯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지만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자주 맘이 상한다.
주로 자신보다 어린 여자 후배들의 태도가
자꾸 눈에 거슬린다.
“그냥 애들이 살랑거리며
분위기 파악 못하는 게 싫어요.”
최근에 유독 애교 많은 직원이 들어왔는데
그녀의 행동들이 거슬렸다.
사무실 분위기가 그녀로 인해 밝아졌다고
모두들 좋아하지만
자신은 이 분위기가 불편하고
오히려 들뜬 직원들 모습이 언짢았다.
상사하고도 이 문제를 의논했지만
오히려 상사로부터 자신의 시각에 대해
부정적인 얘기를 듣고 보니
더 기분 나쁘고 개인적인 감정으로
그 후배를 대하게 된단다.
“저는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공평하게 대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이상하게 그녀를 보면 짜증이 나요.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애교스럽게 부탁도 척척 잘하는 거예요.
거절하기엔 치사스러운 것들을….
눈치도 빠르고 싹싹하게 구니까 괜찮나 봐요.
저에게도 살갑게 구니 딱히 뭐라 말할 순 없지만
더러 얄밉고 불편해서 일전에 한마디 했어요.
‘사무실 분위기가 너무 산만하다’고.
그런데 다른 직원들 반응이 싸한 거예요.
한마디로 저 빼고는 다 좋다는 분위기로,
졸지에 저만 이상한 사람이 됐어요.”
“기분이 좀 떨떠름했겠어요.
그런데 그녀의 행동 중
특별히 거슬리는 게 어떤 건가요?”
“어린애 같은 애교스런 말투? 행동?
그런데 사실 모두에게 상냥하게 하긴 해요.”
순간 그녀의 표정이 복잡해지며
말을 흩어버린다.
“말하자니 좀 미안한 생각이 드나 봐요.
그런데 애교스런 말투나 행동이
왜 그렇게 싫어요?”
한참을 망설인다.
그녀는 오랫동안 어른스럽고 듬직하다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
생계로 바쁜 홀어머니 밑에서 딸 다섯은
자신들의 일을 불평 없이 해야 했다.
똑똑한 넷째 딸로 태어난 그녀 역시
어려서부터 제 할 일을 열심히 하며 살아온 기억밖에 없다.
다행히 공부를 잘해 지역장학금을 받고 지금까지 왔는데
가끔 철없이 행동하는 동료들을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부터 든다.
주위에서 자신의 이런 생각들을 불편해 하는 것을 보면
보란 듯이 일을 더 열심히 하며 자신을 증명했다.
그런데 이번처럼 철없는 행동을 동료들이 좋아하고
자신의 이런 생각들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당황스럽고 마음속에서 무언가 외치고 싶었단다.
어려서부터 제 할 일 열심히 하며 살아
“제가 좀 억울한 것 같아요.
저는 열심히 일해서 여기까지 겨우 왔는데
젊은 친구들이 살랑거리면서
쉽게 가려는 모습이 보기 싫어요.”
“나는 열심히 노력해서 얻었는데
젊은 친구들이 철없이 애교스런 행동으로
쉽게 얻는 것 같아 속상하군요.”
“수고하지 않고 쉽게 얻으려는 것은 비겁한 거잖아요.”
“수고한다는 게 연화씨에겐 어떤 의미예요?”
“참고 애쓰는….”
그녀가 말을 잇지 못하고 울컥한다.
애씀!
애쓰며 참고 살았던 지난날들이
그녀 앞을 하나씩 지나간다.
그 순간들이 보람 있고 자랑스럽다.
결코 부끄럽지 않다.
그런데 무겁고 개운치 않은 이 마음은 뭘까?
애쓴 세월처럼 그녀 마음이 아리다.
머릿속에 소처럼 곰처럼
묵묵히 걷는 모습은 또렷이 떠오르지만
하늘을 나는 여유로운 새의 날갯짓이나
즐겁게 깡총거리는 다람쥐의 사랑스런 모습은 생소하다.
“마음이 아프겠어요.
혹시 전에도 이런 일들이 있었나요?”
“전에 어린 여자 조카가
어른들 앞에서 애교부리면서
엉덩이춤을 추며 씰룩거리는데
그 모습이 참 보기 싫었어요.
모두들 귀엽다며 웃고 박수치는데
저는 싫었어요.
아이가 기분 좋아서 한 거라고
머리로는 알겠는데….
그 일이 종종 떠오르며
영 잊혀지지 않았어요.
지금도 그 생각이 떠오르며
어린 조카한테 미안하고
동시에 어린 시절 저는 누구 앞에서도
어리광을 부려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녀의 뺨에
눈물이 계속 흐른다.
축축한 티슈 더미를 휴지통에 꼭꼭 밀어넣으며
그녀는 나와 함께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그녀가 갖고 싶었고 누리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씩 꺼내 보았다.
유치하고 하찮은 것들이지만
알록달록 귀엽다.
이제 그녀는 그동안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썼던
마음의 마스크를 살며시 벗는다.
우리 모두는 자기가 하고 싶었지만
참고 못했던 것을
다른 사람이 자연스럽게 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언짢아지고 화가 난다.
그리고 그 사람이 미워진다.
참고 살아온 세월이
억울한 거다.
<서송희 만남과 풀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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