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이 QT를 하는 이유도
하나님의 대한 목마름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싶고 알고 싶고
그분이 정말 살아 계시며
나와 동행하시는 분이라는 것에 대한 체험을 얻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하나님을 찾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더 간절히 찾고 계십니다.
보통 한국분들이 관념 속에 복 그러면
만수무강 만사형통 편안히 오래 살면서 부를 누리는 것
이런 것들을 축복이라고 믿어 왔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이런 것들을 복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야곱이 복을 받았던 사람인데 이 사람이 평생의 삶을 마감할 무렵에 에굽 땅에 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바로 왕을 만났을 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자기가 130년을 살았는데 참 험한 세월을 살았습니다 라고 고백을 합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복을 누렸던 사람인데
자신의 삶을 스스로 종합해서 험한 세월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좀 이상하죠?
이상합니다.
그럼 정말 복이 맞나요?
뭐가 복입니까?
야곱은 복을 추구하던 사람이었는데
그 복을 얻은 결과 그 사람은 험한 세월을 살게 됩니다.
그러면 그 복의 실체는 무엇이냐,
하나님을 소유하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소유하는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안락하고 편안하고 무난한 삶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에게 가라고 한 땅은 복이 있는 땅이 아니었습니다.
당시는 복이 없는 자들의 땅이었습니다.
우리는 좋은데를 추구합니다.
더 더 더 더 더 하지만 하나님께서 성경의 인물들에게 명하셨던 것은 좀 다릅니다.
여러분이 복의 근원이 되어서 복 없는 자의 땅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복의 근원이 되어서 복 없는 자에게로 가라는 거예요.
아브라함에게 명해서 내려가라고 한 그 땅으로
하나님께서는 다시 야곱을 내려 보내십니다.
야곱이 내려가고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야곱을 확신시켜 주기 위해서
하나님의 군대를 보여주십니다. 마하나임이란 곳에서.
이때의 야곱의 신앙 수준에 대해서 평가를 해 보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하고 비교해보시기 바랍니다.
야곱이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 알았나요, 몰랐나요? 알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을 수 있었나요, 없었나요?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었습니다.
기본적인 순종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자신의 삶 가운데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요, 모르고 있었나요? 알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에게 체험이 있었나요, 없었나요? 체험 있습니다.
어떤 체험이죠 천사가 오르내리는 것도 보고 하나님의 군대도 보고
자신이 살아온 삶 가운데 어려운 때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예비하시고 도와주셨던 것들을 경험했습니다.
이 정도면 괜찮은 신앙인 거 같죠.
여러분하고 비교할 때 어떻습니까? 비슷한 수준입니까?
하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야곱에게 있어서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해결되지 않은 결정적인 문제,
야곱의 가장 큰 우선순위는 자기자신 이었습니다.
우리가 정말 위기 순간이 되면 나 혼자 남습니다.
나 혼자 남습니다.
이 세상에 남은 건 나 하나밖에 없구나,
이 지친 육체 밖에 없구나, 그렇게 느껴지는 순간이 혹시 없었습니까?
가족도 아이들도 부모님도 그 시간에는 도움이 되지 않고
친구들도 도움이 되지 않는 그런 순간을 혹시 만나 보셨습니까?
그 순간이 야곱이 얍복 강가에 있었던 순간입니다.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야곱을 찾아오십니다.
씨름에 벌어지는데 저는 어떤 지향의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얘 나를 믿어라. 믿지 못하겠어요.
이 세상에 믿을 건 나 하나밖에 없어요.
두 지향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씨름이 되는 것입니다.
야곱에게 있어서 해결되지 않았던 하나의 문제는 자아의 문제였습니다.
자신의 자아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했습니다.
자기를 지독히 사랑했습니다.
그것이 문제의 핵심에 있었습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 괜찮은 거 아닌가요?
제가 말하는 자기애라고 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부분이라는 것을 이해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마지막 유언 비슷한 경고를 하는데
디모데후서에 보면 3장에 이렇게 표현합니다.
너 조심해라 똑바로 들어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른다.
그때는 사람들이 이러이러하게 된다라고 하는데
첫 번째가 뭔지 아시나요?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자랑하고 교만하고
돈을 사랑하고 성내고 쭉 나오는데
그것을 전부 포괄해서 한마디로 말하는 것이
자기를 사랑하고 이것이 우리 문제의 근원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아야
나의 제자가 된다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이야기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혔나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그것이 복음의 완성입니다.
야곱도 이 부분에서 해결되지 못했던 겁니다.
하나님이 원했던 부분은 이 부분에 대한 지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그래서 찾아오신 겁니다.
씨름이 벌어졌고 다리뼈를 빼셨습니다.
그게 뭘 의미하는지 아세요?
유목민에게 있어서요, 제가 유목민과 살아봐서 아는데
생명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이동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야곱은 두 다리를 믿었습니다.
내가 무슨 수가 생기더라도 이 두 다리만 있으면
도망갈 수 있어서 살아남을 수 있어
자기가 믿었던 가장 큰 하나를 딱 건드리셨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 그 한 가지를
하나님께서 건드리셨던 경험이 있는 분들이 있습니까?
그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사업입니까?
여러분이 은행에 보관해 놓은 적금입니까? 아니면 펀드입니까?
아니면 공부 잘하고 있는 자녀들입니까? 좋은 직장을 다니고 있는 남편입니까?
아니면 안락한 내 아파트입니까?
여러분이 의지하고 있는 두 다리는 무엇입니까?
그중에 하나를 건드리실 때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야곱은 다리가 빠지니까 결국은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쪽으로 태도를 바꾸었습니다.
하나님을 붙잡습니다.
나에게 축복해 주지 않으면 내가 보내주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이때 야곱의 열심에 대해서 초점을 맞춥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부분이 중요하다는 걸 볼 수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말합니다. 묻습니다.
네 이름이 뭐냐 존재에 대한 질문입니다.
너라고 하는 사람은 뭐 하고 살았던 사람이니?
야곱입니다. 속이면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남 발뒤꿈치 잡았던 사람입니다.
이제는 너를 야곱이라고 하지 말아라, 이스라엘이라고 해라.
존재를 바꿔 주시는데 네가 스스로 바꿔라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너를 바꿔주었다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십자가를 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손에 못을 박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바꿀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내가 주님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이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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