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교회는 영접기도를 하고 주일성수를 하면 구원을 받았으며,
십일조와 헌금을 넘치도록 내고 교회 봉사를 열심히 하면
이 땅에서 축복을 받아 부자가 되고 행복하게 살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교인들은 주일성수를 비롯해서
교회에서 시행하는 각종 예배의식에 성실하게 참석하려고 애쓰고,
목사가 시키는 대로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하면서 교회 마당을 밟고 있는 중이다.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심판대 앞에 서야 되므로 이 땅을 떠나봐야 알 것이므로 접어두고,
그동안 당신이 교회에서 시키는 대로 십일조를 넘치도록 내고 희생적인 교회 봉사를 통해서
이 땅에서 부자가 되고 성공하는 축복을 누리고 계신가?
이 말을 가르치는 대부분의 목사들은 정작 자신들이
그런 삶을 살지 못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한 일이 아닌가?
우리네 교회의 80%는 일년 재정이 이천만 원이 채 되지 않는 미 자립교회이다.
이 돈으로 건물 월세와 공과금, 주일 예배후의 식사비용을 제외하면 목회자의 용돈밖에 되지 않는다.
교회에서 가장 가난한 가정이 담임목사의 가족이라는 사실이 기이하지 않은가?
목회자처럼 철저하게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평생 주의 일에 헌신하고자 신학교를 졸업하고 모든 것을 바치면서 교회 사역에 헌신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왜 자신의 종을 이렇게 비참하고 굴욕적인 삶을 방치하고 계시는가?
그러면서 설교시간에 교회 일에 헌신하고 충성하며 부자가 되고 성공하게 될 것이라는 설교를 누가 믿겠는가?
그렇다면 둘 중의 하나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신 분이 아니시거나,
아니면 교회에서 가르치는 게 새빨간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어느 것도 인정할 수 없는데 우리가 마주한 암울한 현실이다.
그래서 왜 우리네 교회가 이렇게 무능하고 무기력하게 되었는지 살펴보고 싶다.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사역이 무엇인가?
교회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섬기는 백성들이 모인 곳이다.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는 사람들은
단지 기독교를 종교로 믿는 종교인일 뿐이다.
그렇다면 교회에 나온 교인들은 예외 없이
하나님과 만나고 동행하는 백성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네 교회에서는
영접기도를 마치고 주일성수를 하면 성령과 동행하는 백성이라는 교단교리를
앵무새처럼 외우며 가르치고 있을 뿐이다.
성령과 동행하려면 하나님과 만나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가 무엇인가?
바로 기도와 말씀이다.
그래서 당신이 다니는 교회는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를 가르치고 훈련시키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우리네 교회에서 시행하는 기도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도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 소원을 이루는 기도를
희생적으로 하는 것뿐이다.
그래서 새벽에 교회에 나와서 기도하거나
작정하고 기도하고 금식하며 기도한다.
기도란 하나님의 영과 내 영혼이 만나서 사귀는 통로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간절히 부르며
전심으로 성령의 내주를 구하는 기도를 통해서,
성령께서 나의 믿음을 읽으셨을 때 찾아오셔서 들어오셔서
거주하시면서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아브라함이나 야곱, 요셉, 모세, 여호수아, 사무엘, 다윗 등은
이렇게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도의 습관을 들여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같은 육체의 몸을 입고 있을 때도
기도의 습관을 들여서 기도하곤 하셨다.
사도바울이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콕 집어서 말씀하였고,
예수님도 종말이 가까워올수록 깨어서 항상 기도하라고 명령하셨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는 성령과 사귀는 기도에 대해서 무지하다.
목사들도 모르니 교인들에게 가르칠 수 없다.
그래서 교회를 열심히 다녀도 영혼이 건조하고 냉랭하며
무능하고 무기력하게 살아가게 되는 이유이다.
하나님을 만나는 또 다른 통로가 바로 말씀이다.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며 성경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우리네 교회는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성경말씀을 이해하여
지식으로 머리에 저장하는 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당시 성경이었던 모세오경을 암송해서
백성들에게 가르칠 정도로 성경에 해박하였지만,
성경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알아채지도 못하였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말씀을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지식으로 쌓아두는 것에 불과하지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성령께서 조명해주셔서(비쳐주셔서) 깨달음을 주시어서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 새기도록 해주셔야 한다.
말씀이 가슴에 새겨져야 말씀대로 살 수 있는 마음이 생기고
말씀대로 살아지는 능력도 얻어지는 것이다.
말씀을 배우는 목적이 말씀대로 살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조명해주시지 않는 말씀공부는
공허하기 짝이 없으며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한다.
지금까지 우리네 교회가 말씀공부를 열심히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말씀대로 살지도 못하고 말씀의 능력을 삶의 현장에서 체험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성령이 조명해주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령이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시려면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의 습관을 들여야 한다.
그러나 이미 말씀 드린 대로,
우리네 교회는 성령이 내주 하는 기도에 무지하기 때문에
그동안 열심히 성경공부를 하고 성경 지식을 쌓아두어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
그동안 우리네 교인들은 열성을 다하여 교회를 섬겼다.
성실하게 예배의식에 참석하고 십일조를 드리며
희생적으로 교회봉사를 하면서 열정적으로 신앙생활을 해왔다.
그러나 이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처럼 종교인을 양성했을 뿐이다.
그들은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600여 가지가 넘는 율법의 조항들을 철저하게 지켰지만
예수님으로부터 독사의 새끼라는 독설을 듣고 지옥 불에 던져졌다.
이들이 율법을 철저하게 지켰던 이유는
종교행위가 자기 의와 자기만족의 수단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네 교회는 하나님을 만나서 동행하는 영적 습관을 가르치지 않고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같은 종교적인 사람들만을 양육해왔다.
그 이유는 미혹의 영이 우리네 교회 지도자의 머리를 타고 앉아
자신의 생각을 넣어주며 속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서,
하나님을 만나는 영적 습관을 들이는 일에 몰두해야 한다.
쉬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전심으로 성령의 내주를 간구하며,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고 성령이 주시는 깨달음으로
삶에 적용해서 열매를 맺는 삶을 추구하여야 한다.
이 길만이 당신과 당신의 가족의 영혼이 사는 길이고,
무능하고 무기력한 신앙생활에서 벗어나
평안하고 형통한 삶을 누리는 유일한 길이다.
크리스천 영성학교, 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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