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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기업: 배부름

007 RAMBO 2020. 7. 3. 08:32

세계 곳곳에는 절대 기근으로 죽어 가는 많은 사람들이

현재에도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한국도 보리 고개라는 것을 겪어 보았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꿀꿀이죽을 배급받아 살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아 식구가 많았던 가정에서는

몇 사람들은 항상 배고픔을 감수하곤 하였습니다.

저희가 학교를 다닐 때는 점심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많은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은 부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먹을 것이 너무나 많아 많이 먹고 살을 빼느라고

사우나를 다니고 헬스클럽에 다니기도 하고 에어로빅을 하러 다니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들도 마음껏 고기를 먹고 생선을 먹고 희귀한 음식들을 먹고 간식을 먹습니다.

설날이나 되어야 고기 국을 먹을 수 있었던 예전과는 다릅니다.

밥이 아니라도 라면도 있고 다른 대용식품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배부른 우리들이 마음이

풍요하지 못하고 항상 비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짐승은 “고기”를 먹으면 배부릅니다(계19:21).

그리고 포만감을 느낍니다. 행복을 느낍니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갈비를 먹고 배가 부르다고 해서

행복하게 잠을 청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음식이 우리의 영적인 배고픔을 해결해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유럽이 풍요해지자 교회는 텅텅 비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사원도 이제는 관광유적지가 될 뿐입니다.

 

미국이 풍요해지자 교회가 텅 비게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은 필요 없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운동경기라든지 아니면 다른 쾌락을 추구하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마치 행복해 지려고 악을 쓰며 사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면 인간들이 행복해지고 건강해져야 할텐데

청소년들의 자살율은 더욱 늘어가고 노년층의 정신병자들은 급격히 늘어가고

스트레스에 의한 질병이 만연하고 마음들은 공허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인간이 입으로 들어가는 것만 가지고

살 수 없는 영적인 존재임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갈증을 떡이나 고기가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 점이 짐승과 인간이 다른 점입니다.

 

인간은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의 양식을 먹어야 사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중요한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

영적으로 궁핍함을 느끼는 자들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배고픔과 주림은 주님을 갈망하는 문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 배고픔과 주림은 주님이 채워주시는 서곡이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나라에 가면 무엇이 풍성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요한복음 6장(35,48,51,55,58절)에는 그리스도를 무엇이라고 표현하였습니까?

주님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되도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왜 이러한 자들이 복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이 복이 있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배부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이

의로 배부르고 채우게 된다는 뜻입니다.

 

義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의로 배부르고 마시게 될 것입니다.

 

누군가가 사랑에 주리고 목마르다면 사랑을 찾아 갈급하게 나서고

비로소 사랑을 찾을 때 배부르도록 사랑을 먹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산상수훈에서는 무엇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인가를 분명히 밝혀 주고 있습니다.

세상의 권세나 명예, 재물 같은 것에 배고픈 사람들을 복되도다 라고 선포하신 것이 아닙니다.

 

의는 포괄적인 개념으로서 주님의 뜻, 그리스도,

주님의 말씀등등으로 생각할 수 있는 개념입니다.

 

의라는 것이 주님의 말씀이라고 정의한다면

의에 대하여 목마르고 주린 자들은

말씀이 있어야 배부르게 될 것입니다.

 

의를 그리스도라고 정의할 때에

이들의 복은 그리스도로 배부르게 먹고 마시게 되는 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주리고 목마른 모든 자들이 복이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과 말씀 혹은 그리스도라는 영적인 세계에 대해

목마른 자들이 복을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의에 대해서 주리고 목마른 자들이 받는 복은

넘치는 의로 배부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적으로 하나님께 대하여 

갈급함을 느끼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주님이 부르시는 음성을 듣고 문을 열기만 하면

주님이 함께 마시고 먹는 축제가 벌어지게 됩니다.

 

탕자는 먹을 것이 풍성한 집에서 살 때는

그 음식이 얼마나 중요하고 귀한 것인가를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가 사업에 실패하고 주리고 목마르게 되었을 때에

아버지 집의 풍요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렇게 주리고 목마름의 체험이 있을 때

주님이 부르시는 음성을 듣고 문을 열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이 가난한 자들, 굶주린 자들, 목마른 자들이

하나님나라에서 복된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자들이 받는 복은 어떤 것들일까요?

 

 

1. 그들은 먹게 되어 배부를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떡을 먹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배부르도록 먹을 것입니다. 넘치도록 먹을 것입니다. 

그래서 내 잔이 넘치는 체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배고픈 자에게 배부르는 체험은

겪어보지 않으면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필자의 교회에서 무숙자들에게 갈비를 해서 식사대접을 한 적이 있습니다.

모두 120명의 무숙자(THE HOMELESS)들이 와서 최상급의 갈비를 구어서 먹게 되었습니다.

 

한 무숙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 주간에는 우리가 너무 행복한 주간이예요.

3일을 계속해서 먹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길거리에서 굶주리고 추워 떠는 그들에게

3일을 계속해서 먹을 수 있는 것이 생애의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우리들은 배부르게 먹고 살면서 이러한 감사를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2. 그들은 넘치게 마시게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7:37,38)

 

이러한 생수는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물입니다.

우리가 목이 마르다고 하여 바닷물을 마실 수는 없습니다.

더 큰 갈증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첩인 하갈이 아들 이스마엘을 데리고 아브라함의 집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들에서 방황을 하다가 가지고 나온 물이 다하였습니다.

 

하갈은 절박한 심정이 되어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주님이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주위에 있는 샘에 눈에 뜨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넘치도록 그 물을 마셨습니다.

주님이 주신 물이 그들의 갈증을 해소하여 주었으며

넘치도록 마실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통과할 때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이 물이었습니다.

물이 없기 때문에 그 더운 광야와 사막에서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주님은 모세를 통하여 물을 주시고

마라의 쓴 물을 달게 하셨습니다.

 

그 물은 광야에서 그들에게 생수, 생명수의 역활을 하였습니다.

물이 있는 곳에 깨끗함이 있고 풍성함이 있고 그리고 생명이 있습니다.

 

이 세상이 주는 쾌락과 즐거움으로는

이러한 자들의 심령을 채워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먹으면 먹을 수록 더 공허해지고 목마르게 됩니다.

말씀의 떡과 생수가 들어갈 때 목마름과 배고픔의 해결을 받습니다.

 

이 산상수훈의 복은 바른 양식을 위해 갈급한 자들이

생명의 양식으로 공급을 받음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의라는 양식에 대해 주리고 목마른 자들에게

의라는 양식으로 배부르게 채워주시는 역사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이루어진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나라의 백성은 바로 이러한 양식에 배고픔과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자들을 우리는 영적인 사람이라고 말하게 됩니다.

 

이러한 갈급함을 채우기 위해 기도원에도 올라가 보고 부흥회도 가보고

성경공부에도 참석을 하면서 노력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외형적인 노력입니다.

이러한 노력이 생명의 떡과 만나는 순간에

실제적으로 채워지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갈급함과 목마름은 배부르도록 먹을 수 있는

복을 받는 길목에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영적인 배고픔과 주림을 감사하십시오.

곧 주님이 넘치도록 채워 주실 것입니다.

 

 

 

윤남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