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글모음/신앙글.

누구나 고난과 고통을 갖고 살아갑니다

007 RAMBO 2019. 9. 12. 07:44

사람들을 겉으로 볼 때 "저런 사람은 무슨 걱정이 있을까?" 싶어도

그 사람의 형편을 속속들이 다 들여다보면

누구에게나 이런 저런 고통이 있고

인생의 짐들이 있다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러한 근심과 고통이 우리 인간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도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에덴동산과 같이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아담과 하와를 거기 살게 해 주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뱀의 말을 따라 갔습니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는 타락의 역사였습니다.

 

01. 아담을 창조 하시고 에덴 동산에 살게 해 주었지마 타락했습니다.

02. 노아의 후손들도 오래 가지 못하고 곧 타락해 버렸습니다.

03. 아브라함의 자손들도 애굽에 들어가서 곧 애굽 사람들과 같이 되었습니다.

04. 요셉을 통하여 누리던 은혜도 곧 잊어 버렸습니다.

05. 모세를 보내어 애굽에서 건져 주셨지만 타락해 버렸습니다.

06.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차지하여 분배 해 주었지만 곧 타락해 버렸습니다.

07. 옷니엘이 사사로 지도했지만 곧 타락해 버렸습니다.

08. 에훗의 구원도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09. 삼갈의 노력도 허사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10. 드보라와 바락이 베풀어 준 은혜도 쉽게 망각되었습니다.

 

11. 기드온이 미디안의 손에서 건져 주었지만 배은망덕으로 타락했습니다.

12. 돌라 야일 입다 입산 엘론 압돈이 노력이야 했겠지만 타락했습니다.

13. 나실인 삼손의 구원도 오래 가지 못했고 삼손까지 타락해 버렸습니다.

14. 사무엘이 구별되게 해 보려 했지만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15. 사울을 세워서 새롭게 될 줄 알았지만 타락했습니다.

16. 다윗도 젊은 날에 잘 해 보려 했지만 한 순간의 실수로 어려웠습니다.

17. 나단 선지자가 있었고 갓이란 선지자가 있었지만 나라는 어려웠습니다.

18. 아히야 선지자가 있었지만 크게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19. 솔로몬 역시 처음에 잘 하려 했지만 곧 타락했습니다.

20. 르호보암이 다스리게 되면서 나라는 점점 어려웠습니다.

 

21. 여호사밧이란 사람이 그래도 선한 편이었지만 분별력이 없었습니다.

22. 디셉 사람 엘리야를 북 왕국에 보냈지만 아합도 이세벨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23. 여호사밧 때는 출중한 인물이 없어서 아무 것도 되지 않았습니다.

24. 갑절의 영감을 받은 엘리사를 보내셨지만 이스라엘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25. 미가야 선지자는 바른 말을 했지만 아합은 듣지 않았습니다.

26. 예후라는 예언자, 야하시엘, 엘리에셀 등의 여언자도 영향력은 별로였습니다.

27. 요아스도 처음에는 잘하는 듯 했지만 곧 부패하고 타락했습니다.

28. 아마샤는 잘 하는 듯 했지만 결국이 좋지 않았습니다.

29. 오뎃이란 하나님의 사람이 노력했겠지만 별무소용이었습니다.

30. 웃시야도 처음에는 잘 해 나가다가 후에는 교만하여 타락했습니다.

 

31. 요담도 말씀을 알지 못하여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32. 아하스는 겁약하여 아무 것도 해 보지 못하였습니다.

33. 아모스가 북왕국에 가서 외쳤지만 이스라엘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34. 호세아가 설득을 하려고 노력했지만 아무런 효과는 없었습니다.

35. 히스기야는 젊은 날에 정직했지만 분별력이 없었습니다.

36. 이사야 선지와 미가 선지자가 그 시대를 변화시키지 못했습니다.

37. 므낫세는 악한 어머니 때문에 어려서부터 못되게 자라 악을 행했습니다.

38. 아몬도 짧은 기간에도 악을 행하였습니다.

39. 요시야가 겨우 바르게 하려고 했던 사람인데 오래 가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40. 요시야가 죽은 후에는 그의 아내가 아들들 교육을 잘 못해서 국운이 기울었습니다.

 

41. 여선지 훌다도 이름만 나올 따름이지 어떤 사역을 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42.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 시대는 희망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43. 스바냐 선지자가 외쳤지만 그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는 없었습니다.

44. 하박국 선지자도 돌이킬 수는 없었습니다.

45. 예레미야 선지자가 40년을 울어도 유다의 운명을 돌이킬 수가 없었습니다.

46. 다니엘 시대 바벨론 교육으로 우상숭배와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은 끝났습니다.

47. 에스겔 선지자의 노력으로 하나님의 심정이 전달되기는 했던 것 같습니다.

48. 바벨론에서 돌아와서 다시 이방 여인들을 취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49. 에스라와 느혜미야 때에 성경을 한번 통독한 일이 있었습니다.

50. 느혜미야 후에 귀환 공동체는 곧 다시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51. 말라기 선지자의 경고로써 구약을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52. 장장 400 년 동안은 아예 아무도 보내지도 않으셨습니다.

53. 세례 요한이 드디어 나타났고 국민들은 회개 했습니다.

54. 예수님께서 오시게 되었고 역사는 새롭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55. 성령님의 강림과 함께 사도들은 충만하여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56. 사도들의 생전에 벌써 64년부터 3년 반동안 첫 번째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57. 요한 사도 시대에 다시 2차 박해가 있었습니다.

58. 요한 사도 사후에 3차 박해로부터 10차 박해까지 250년간 박해가 가해졌습니다.

59. 박해 기간동안 교회는 지하에서 숨어서 가르치고 배웠습니다.

60. 주후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교회가 지상으로 올라왔습니다.

61. 그 동안 지하교회에서는 신학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62. 교회 자유가 선포된 이후부터 교리 논쟁이 계속되었습니다.

 

서방 교회와 동방 정교회는 여러 차례 종교회의를 거쳤지만

인간의 타락은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01. 제1차 니케아 공의회(325)

02. 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

03. 에페소스 공의회(431)

04. 칼케돈 공의회(451)

05.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553)

06. 제3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680~681)

07. 제2차 니케아 공의회(787)

 

08. 로마 가톨릭이 인정한 공의회는 다음과 같습니다.

09. 제4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869~870)

10. 제1차 라테란 공의회(1123)

11. 제2차 라테란 공의회(1139)

12. 제3차 라테란 공의회(1179)

13. 제4차 라테란 공의회(1215)

14. 제1차 리옹 공의회(1245)

15. 제2차 리옹 공의회(1274)

16. 빈 공의회(1311~12)

17. 콘스탄츠 공의회(1414~18)

18. 페라라-피렌체 공의회(1438~45경)

19. 제5차 라테란 공의회(1512~17)

20. 트리엔트 공의회(1545~63)

21.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69~70)

22.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

 

이러한 종교회의를 할 때마다 점점 성경에서 멀어져가는

악한 교리를 만들어 내곤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 개신교의 경우는 점점 나아지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W.C.C(세계교회협의회) 대회가 열린 곳

1948년 제 1 차 암스테르담 대회

1954년 제 2 차 에반스톤 대회

1961년 제 3 차 뉴델리 대회-에큐메니칼 선교신학으로

1968년 제 4 차 웁살라 대회- 선교의 갱신

1975년 제 5 차 나이로비 대회-통전적 선교대회

1983년 제 6 차 벤쿠버 대회

1991년 제 7 차 캔버라 대회(정현경 교수 사건)

1998년 제 8 차 WCC 하라레 대회

2006년 제 9 차 WCC 브라질 포르토 알레그레

2013년 제 10차 WCC 대한민국 부산대회도 참담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온 세계에 그렇게 많은 신학대학들과 그렇게 많은 교회와

그렇게 신령한 목사들이 많이 있는 것 같지만

세상의 타락은 막을 수가 없었고 온 세상은 점점 더 타락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를

심도 있게 살펴보고 우리 모두가 회개하고 바른 길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신령한 능력을 가져도 안 되었고

거창한 종교 회의를 해도 안 되었고

신학대학에서 고담준론을 펼친다고 해도 인간성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현대 교회들이 벌이는 다양한 프로그램도 거의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을 제대로 알아듣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들의 심령과 삶 속에는

현저한 변화가 시작합니다.

 

사람이 변화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1. 큰 은혜 앞에서 혹 변화되는 수가 있습니다.

2. 큰 사랑 앞에서 혹 변화되는 수가 있습니다.

3. 큰 진리 앞에서 혹 변화되는 수가 있습니다.

4. 죽음 앞에 가서야 변화되는 수가 있습니다.

5. 큰 고난 앞에서 혹 변화되는 수가 있습니다.

 

다른 어떤 것으로도 사람이 변화되지 않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하는

하나님의 심정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 놓아서 인간들의 죄를 대속하게 하셨지만

인간들이 돌아오지도 않고 거들떠보지도 않으며

세상에서 자기의 욕심과 죄성을 따라가는 인간들을

날마다 보아야 하는 하나님의 심정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도 우리나라의 강원도만한

그 작은 나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모세로부터 말라기까지 꼬박 1000년을 씨름을 하셨고

그 많은 예언자들을 보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서 안에서 우리는 통곡을 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구나 드러내지 못할 한 가지 이상의 아픔과 고난이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서

결국은 기도하게 되지만 기도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해서 다 된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전능하시지만 의지의 자유와 선택의 자유를 가지고 있는

인간들을 다루시기가 그렇게 어렵다는 것입니다.

 

인간을 개조하는 것은

인간을 창조하는 것 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는

날마다 하시는 말씀이 "보시기에 좋았더라"하고 기록하고 있고

불과 6일만에 다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인간들이 타락한 후에 이들을 개조하는데는

6일이 아니라 6000년 걸려도 어렵다는 것입니다.

6,000년이면 2,190,000일이 되는 세월이 흘러도 어렵다는 것입니다.

 

창조하실 때는 신바람 나게 휘파람을 불면서 창조하셨지만

인간 개조를 위해서는 십자가에 달려서

‘엘리 엘리’를 부르짖는 고통을 겪으시면서도

쉽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보아야 하지만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도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짐작하기로는 교회에 다닌다고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극히 소수가 천국에 들어갈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하게 됩니다.

이것이 사실이고 현실입니다.


이웃이나 가족이나 일가친척도 염려해야 하지만

우리 자신도 실족하거나 낙심하지 않도록 마음을 추스려야 할 것입니다.



- 에스라 칼럼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