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중에서 인간만이 유일하게 감정을 속일 줄 안다.
소위 겉과 속이 다르게 반응한다.
겉으로는 웃으면서 속으로는 울 수도 있고,
겉으로는 선하나 속으로는 악을 품을 수도 있다.
이처럼 인간은 의도적으로 겉모습을 꾸민다.
때문에 겉만 보고는 그 사람의 진실을 알 수 없다.
그가 웃고 있다고 나에게 호의적인 것도 아니다.
그 웃음의 의미를 나는 읽을 수 없다.
정말 나에게 호의적이어서 웃는 것인지,
가소롭다 생각해서 웃는 것인지,
속으로는 해치려 하면서 가장한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사람이 세상 그 어떤 존재보다 무섭다.
본 적 없는 사람이 다가오면 긴장한다.
드러난 표정과는 상관없이
그 의도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표정만 보고는 그의 속내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만이 남에게 속내를 숨길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난 표정 또는 반응과 다르게
인간은 얼마든지 다른 의도를 숨기고 있다가
어느 순간 본심을 드러내 갑자기 다른 반응으로 전환할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내는 반응으로
상대가 적인지 우군인지 알 수 없다.
인간은 이렇게 상대를 얼마든 속이려 시도한다.
때문에 인간은 서로 경계하기도 하고 믿기도 한다.
이와는 달리 짐승은 속내를 숨길 줄 모른다.
겉으로 드러난 몸짓이나 반응이 전부다.
그 반응의 일정한 패턴만 알 고 있으면
얼마든지 그 짐승의 속내를 알고 대처할 수 있다.
이를테면 꼬리를 위로 말아 올리거나 들어 올린 개는
사람이 특이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 한 물지 않는다.
아무리 크게 짖어도 그는 사람을 적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꼬리를 밑으로 내린 개는 사람을 경계한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개는 겉과 속이 같다.
반응과 속내가 같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세 살 이하의 아이는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단순한 동물로 취급한다.
이때 아이는 인간처럼 감정을 왜곡하거나 속이지 않기 때문이다.
동물처럼 속으로 슬프면 겉으로도 슬픈 표정이다.
마음으로 좋으면 겉으로도 웃는다.
즉각즉각 반응한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겉과 속이 같게 반응한다.
그래서 갓난아이나 세 살 적 아이는 동물로 본다.
그러다 네 살쯤부터 아이는 의도를 갖는다.
세상에 의도적인 반응을 시작한다.
무엇이 자신한ㄴ테 유리한지 계산을 하면서
웃을 일도 울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낸다.
울 일도 참아서 원하는 입장에 서려한다.
세상을 계산의 대상으로 보면서
아이는 인간으로 변한다.
감정을 속일 줄 아는, 감정을 왜곡할 줄 아는 인간으로 변한다.
때문에 같은 사람이면서 사람은 사람을 제일 두려워한다.
겉으로 드러난 표정만으로,
반응만으로 속내를 알 수 없는 인간,
인간만이 감정을 속일 줄 안다.
참으로 영악한 동물이다.
알고 보면 가장 아름답고, 가장 고상하기도 한 반면
가장 두려운 존재, 가장 무서운 존재, 가장 추악한 존재가 인간이다.
그럼에도 오늘도 그 인간들 속으로 나는 들어간다.
내가 대하는 인간들은 선한 인간들이라고 믿는다.
- 최복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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