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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라면

007 RAMBO 2018. 12. 30. 08:53


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어린 시절 아토피가 심했다고 하더군요.


하나뿐인 딸을 걱정하던 엄마는

건강 음식, 웰빙 마니아가 되셨고,

엄마의 엄명으로 우리 집은 인스턴트 음식이

금지되어 버렸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아주 건강해서 아무거나 잘 먹지만

엄마는 아직도 음식에 예민하십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건 아빠가 라면을 아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엄마가 친구들과 모임이 있어

조금 늦어진다는 소식에 아빠는 후다닥 슈퍼에 가서

라면 2개를 사 오셨습니다.


"아빠. 엄마가 알면 난리 날 텐데."

"괜찮아. 안 걸리면 될 거야!"


그리고 아빠의 눈물겨운 고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작은 버너와 냄비를 준비하고, 냄새로 들킬까 싶어

추운 베란다에 쭈그려 앉아 엄마가 안 계시는

시간을 이용하여 라면을 끓여 먹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라면을 끓여 드시고

엄마 몰래 설거지까지 마친 아빠는 저를 향해

손가락으로 승리의 V자를 척 내밀며

마치 전쟁터에서 이겨 돌아오는 장수의

표정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저희 아빠 너무 귀여우시죠?

근데 아빠.

사실 엄마는 아빠 라면 먹는 거 다 알고 있었답니다.

베란다에서 그러는 게 너무 애처로워서

이번 한 번만 봐준 거라네요.




행복은 밖에서 오는 것도 아니며,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 아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고작 라면 하나에서도 사랑과 기쁨을

발견할 수 있듯이 말입니다.



# 오늘의 명언


어리석은 자는 멀리서 행복을 찾고,

현명한 자는 자신의 발치에서 행복을 키워간다.


– 제임스 오펜하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