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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

007 RAMBO 2018. 12. 1. 20:04

국수 / 박후기


늦은 밤

눈 내리는 포장마차에 앉아

국수를 말아먹는다


국수와 내가

한 국자

뜨거운 국물로

언 몸을 녹인다


얼어붙은 탁자 위에서

주르륵

국수그릇이 미끄러지고,


멸치국물보다

싱거운 내가

나무젓가락의 가랑이를 벌리며


승자 없는 싸움의

옆자리에 앉아 있다


부침개처럼

술판이 뒤집어진다


엎어진 김에

쉬어가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막차가 도착하기 전

미혹에 걸려 넘어진 마음


다시

일으켜세워야 한다



시집, <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 - 창비. 2009.8 > 中에서



1968 경기도 평택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2003〈작가세계〉신인상에「내 가슴의 무늬」 外 6편의 시가 당선되어 등단

2006 제24회 신동엽창작상 受賞 詩集으로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 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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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 생각>

이따금, 그런 생각이 든다.

삶이란 참으로 처연(凄然)한 것이라는.

이 시를 감상하니... 더욱, 그런 느낌.


비애로운 삶이 담긴 쓸쓸한 풍경이

포장마차와 <오버랩 Overlap>이 되어

눈물 한 방울, 뚝 떨어질 것 같다.


하루 종일,

생존경쟁에 시달리다가

늦은 퇴근길에

뜨거운 국물의 국수 한 그릇을

심호흡처럼 들이키는 정경(情景)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옆 자리의 질펀하니 벌어진 술판에...

어찌, 그라고 해서 하루의 피곤을 달래줄

술 한 잔 생각이 없겠는가.


막차의 걱정에

소주 한 잔마저 망설여지는 마음.

무엇을 위한 추스림인가.

결코, 그 자신을 위한 것은 아니리라.

(그를 기다리는 가족...)


처연한 분위기가 시 전체에 퍼져 있음에도,

그 속에 따뜻한 인간의 온기(溫氣)를 품고 있음이 느껴진다.


고단한 삶의 기반(基盤)을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직시(直視)하면서도,

배경으로 자리하는 그 어떤 따뜻한 서정성도

아름답게 돋보이는 시 한 편이란 생각...


                                             -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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