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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초콜릿의 아버지 밀턴 허쉬

007 RAMBO 2016. 1. 3. 04:32


 


아이들이 좋아하는 초콜릿 중에

허쉬 초콜릿이 있습니다.

아주 맛있는 초콜릿입니다.

독일계 유태인인 밀턴 허쉬가 세운 기업입니다.


밀턴 허쉬가 사업에 성공하여

지역사회를 위해 세운 학교가

미국의 밀턴 허쉬 스쿨입니다.


대학을 빼고 세계에서 가장 부자인 학교입니다.

세계적 초콜릿 업체 허쉬푸드의 최대주주여서

재산이 수백억 달러에 이릅니다.


유치원에서 초ㆍ중ㆍ고교 과정의 학생 1,300명은

등록금은 물론 여가활동까지 돈 한 푼 내지 않습니다.

학생 1인에게 들어가는 비용은 연간 약 10만 달러나 됩니다.

어떻게 이런 학교가 다 있을까요?




미국 초콜릿의 아버지 밀턴 허쉬(Milton Hershey) 덕분입니다.

허쉬스쿨은 그의 사회공헌 중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기업도시인 필라델피아 소재 허쉬 타운은 산업 유토피아로 손꼽힙니다.

그가 조성한 허쉬 리조트에는 연 40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들어 지역민들을 먹여 살리고 있습니다.



밀턴 허쉬는 독실한 메노나이트(Mennonite 기독교의 한 종파.

엄격한 규율에 따라 외부 세상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면서 공동체 생활을 함) 집안에서

1857년 9월13일 태어나 초등학교 4학년 때 학업을 접은 뒤

인쇄소와 제과점 견습공을 거쳐 자수성가했습니다.



두 차례 파산을 겪으면서도 결국 카라멜로 돈을 번 그는

1883년 시카고박람회에 출품된 독일제 기계에 매료돼

카라멜 대량생산 체제를 갖췄습니다.


탄탄대로를 걷던 카라멜 사업을

당시로서는 거액인 100만 달러에 넘긴 후

초콜릿 사업에서 대성공을 거두며 거부 반열에 올랐습니다.


허쉬의 경영 최우선 방침은 직원우대입니다.

여의도 두 배 면적의 땅을 사들여

사택과 헬스장, 수영장, 골프장을 지어

직원들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오갈 곳 없는 소년들을 위해 허쉬 스쿨을 세웠습니다.



아내와 사별(1915년)한 직후에는 전 재산을 학교와 허쉬 타운에 바쳤습니다.

국제 유통망 확충에 전념하던 허쉬가

1945년 88세로 눈을 감은 지 반세기가 훌쩍 더 넘은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그를 <슈거 대디(Sugar Daddy)>로 기억합니다.

애칭에는 초콜릿보다 더 달콤하고 귀한 것을 남겨준

만인의 아버지라는 존경이 담겨 있습니다.


지금도 그가 남긴 기업이

사회에 엄청난 영향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처럼 한 사람이 선한 꿈을 이루게 될 때

그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과 후손들이

이렇게 큰 혜택을 누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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