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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 고치려고 먹는 약이 '영양소 도둑'이라니..

007 RAMBO 2015. 9. 8. 14:17

약의 두 얼굴 '드럭머거'를 잡아라

만성질환자가 복용하는 약 약효 높이는 비타민B 강탈 영양 결핍, 질병 악화 초래


중앙일보 | 입력 2015.09.07. 00:03 | 수정 2015.09.07. 10:13



약을 먹으면 내 몸속 영양소가 고갈된다?

낯선 개념이지만 사실이다.

대상은 당뇨병, 위궤양, 고혈압, 뇌졸중, 고지혈증 치료제 등 장기 복용하는 의약품이다.


순천향대병원 가정의학과 유병욱 교수는 “약이 몸속에서 대사되는 과정에서

몸안에 쌓아놓은 영양소를 빠르게 소모하거나 흡수를 방해한다”고 말했다.

약이 유발하는 영양소·비타민B 결핍에 대해 알아봤다.


당뇨병, 고혈압 약 비타민B 흡수 막아


만성질환자는 약을 장기 복용한다. 약은 양날의 칼이다.

질병을 효과적으로 치료하지만 한편으론 필수 영양소의 결핍을 유도한다.


최근 이런 약의 이중성을 강조한 ‘드럭머거(Drug Muggers·약 강도)’개념이 주목받고 있다.

드럭머거는 의약품이 마치 강도처럼 몸속에 저장·축적돼 있는 유익한 영양소를 강탈한다는 의미다.


 

대표적인 것이 포도당의 생산·흡수를 차단해 혈당을 낮추는 메트포르민 성분의 당뇨병 치료제다.

초기 당뇨병 환자가 복용한다. 문제는 메트포르민이 포도당뿐 아니라

비타민B12·엽산(비타민B9)의 흡수도 방해한다는 점이다.


서울대 약대 강건욱 교수는 “메트포르민 성분을 포함한

당뇨병 치료제를 2년 이상 장기 복용하는 환자의 일부에서

비타민B12의 농도가 정상 수치 이하로 줄었다는 연구결과가 다수 보고됐다”고 말했다.


비타민B12는 신경을 둘러싼 막을 구성하는 물질을 만든다.

엽산은 비타민B12를 도와 적혈구 합성을 촉진한다.

이들 영양소가 부족해지면 감각신경에 손상이 생겨 손발이 따끔거리고, 팔다리의 무력감을 호소한다.

결핍 증상이 심해지면 악성빈혈·신경손상·인지능력 저하로 이어진다.

유 교수는 “다행히 메트포르민 복용을 중단하거나 부족한 영양소를 보충하면 빠르게 회복한다”고 말했다.


위산 생산·분비를 억제하는 PPI계열(프론톤펌프억제제) 위염·위궤양·역류성식도염 치료제도 주의해야 한다.

대부분의 영양소는 음식을 통해 섭취한다.

만일 음식을 분해하는 위산이 줄면 어떻게 될까?

아무리 많이 먹어도 흡수율이 떨어진다.

위산은 육류·생선·유제품에 풍부한 비타민B12를 흡수하는 데 필요하다.

1년 이상 약으로 위산 분비를 억제하면 속쓰림 증상은 나아지지만 비타민B12 결핍증은 더욱 악화된다.


고혈압 치료제인 이뇨제는 소변량을 늘려 혈압을 낮춘다.

이 과정에서 수용성인 비타민B도 함께 빠져나간다.

비타민B는 영양소인 포도당을 세포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로 바꾸는 필수 성분이다.

비타민B가 부족하면 에너지를 충분히 전환하지 못해 체력이 떨어진다.

젖산·피루브산 같은 산성 물질 농도가 쉽게 증가해 쉬어도 무기력증·피로감을 느낀다.

만일 술을 자주 마시거나 수면부족·스트레스·과로가 심하다면 비타민B 소모량은 더 늘어난다.

강 교수는 “약을 장기간 복용하면 몸속 영양소가 일반인보다 빨리 고갈된다”며

“정기적으로 영양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의해야 할 점은 또 있다.

영양소 결핍은 당뇨병·고혈압 같은 만성질환 관리를 까다롭게 한다.

오히려 병을 키울 수도 있다.

유 교수는 “약효를 충분히 얻기 위해 비타민 B6·B9·B12·칼슘·코엔자임Q10 같은 다양한 영양소가 필요하다”며

“몸속 영양소가 부족하면 약을 완전히 흡수하지 못해 생기는 찌꺼기인 호모시스테인 농도가 높아진다”고 말했다.


식품 섭취, 비타민제 복용으로 보충


호모시스테인은 메티오닌이라는 아미노산이 분해되면서 생기는 일종의 독성 아미노산이다.

혈관 벽을 파괴하고, 혈전(피떡)이 잘 만들어지도록 한다.

심혈관질환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기도 한다.

약을 장복하는 만성질환자나 마취가 필요한 수술을 한 사람은 호모시스테인 농도가 15~20% 증가한다.

괜찮겠지 하고 방치하면 만성질환 합병증인 당뇨병성 신경병증·당뇨 망막병증·뇌졸중으로 악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약을 먹어 영양소가 부족해지고, 다시 약효가 떨어져 병이 심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일반인보다 영양소·비타민 소모가 빠른 만성질환자는 일일 최소 권장량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최적 섭취량이 주목받는 이유다.

비타민B의 하루 최적 섭취량은 50~100㎎.

식품 섭취만으로는 충족하기 어렵기 때문에 비타민제를 복용하는 것이 좋다.




권선미 기자 kwon.sunm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