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도 교회도, 목사도 교우도 전혀 없던 시절에
믿음의 조상이라는 명예로운 별명이 붙은 아브라함은
어떻게 그렇게 강철 같은 믿음의 소유자가 되었을까?
필자는 매일 기도할 때마다 아브라함의 이름을 떠올리며,
그분처럼 견고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리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에 대해서 전혀 알려지지 않은 시대에 태어났는데,
그가 어떻게 해서 모든 크리스천들이 우러러마지않는 전설적인 성경의 인물이 되었을까?
당신도 궁금하지 않으신가?
그 이유는 그는 무척이나 고독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의 직업은 목동이었다.
목동은 양떼를 몰고 다니면서 신선한 목초지를 찾는 게 그의 일이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목동들은 가족과 친척과 친구와 이웃을 떠나 고독하게 살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을 만나는 때는 양들의 털을 깎거나 사고팔기 위해 장에 갈 때나 가능할 것이다.
평생 혼자서 잠자고 혼자서 식사를 차려먹고 혼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야한다.
그래서 아브라함이나 이삭, 야곱이 탁월한 성경의 위인이 될 수 있는 환상적인 환경에 살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루 종일 하나님을 떠올리며 그분과 깊고 친밀한 교제의 기도로 하루를 채웠음에 틀림없다.
이 시대의 우리네 크리스천들은 교회에 와서도 하나님을 만날 생각이 없다.
예배의식을 드리고 교회봉사를 하면서 친한 교우들과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면서 수다를 떠느라고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이들은 마치 학교에 와서 공부를 할 생각도 없으며
수업시간에 잠만 자다가 점심시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학생과 같다.
그러니 이런 학생이 성적이 나올 리가 없는 것처럼,
우리네 교인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와 변화, 능력과 열매를 경험하지 못한다.
그러나 목사들은 교인들의 영혼과 삶 따위는 관심이 없고,
교회예배에 열심히 나와서 헌금을 넘치도록 드리고
목사가 시키는 대로 교회봉사를 잘해주면 어 이상 바랄 것이 없다.
교인들은 돈을 벌어주는 고객일 뿐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는 법을 가르치지도 않고
교인들은 배울 생각도 없이 교회마당을 밟고 있는 중이다.
최근 코로나사태로 교회가 둘로 나뉘어졌다.
정부방침대로 현장예배를 축소하고 인터넷 동영상으로 드리는 교회와,
기존처럼 현장예배를 강행하는 교회이다.
물론 마스크를 쓰고 대화를 자제하고 벽을 보고 식사를 하면서
방역에 최대한 조심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한다.
그러면 현장예배를 강행하는 교회의 속내를 살펴보니까,
주일성수 개념해이로 예배 출석률이 줄어들며 교회프로그램에 참석도 줄어들 것이며,
그로 인해 헌금이 감소하여 재정난에 봉착하여 교회인건비 감소로 교회인력을 줄여야 하고
성가대지휘자나 악기연주자들의 지원 부족으로 인력이 감소되며,
목사지원자가 사라진 신학대학교도 존립이 위태로워질 것이며,
예배를 중단한 대형교회 목사들의 영향력이 유명무실해질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현장예배를 강행하는 이유가 교인들의 영혼과 삶에 대한 관점을 전혀 없고,
오직 교회건물과 조직, 예배의식을 시행하는 데 필요한 인건비가 줄어드는 걱정이 가장 컸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의 비난에도 아랑곳없이 기를 쓰고 현장예배를 강행하는 이유였다.
이처럼 코로나 사태로 교회의 무능과 무기력을 절감하며
하나님께 그간의 죄악을 회개하며 불쌍히 여겨달라는 기도를 하지 않고,
현장예배를 강행하면서라도 어떻게든 교회조직을 살려서 목사직을 유지하고 싶은 열망(?) 뿐이다.
왜 하나님께서 코로나바이러스를 허락하셨는지 아는가?
바로 패역한 우리네 교회와 탐욕스러운 목사들을 더 이상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양의 고기를 먹고 양의 털을 입고 다니면서
양들의 영혼과 삶을 돌보는 데는 관심이 없다.
교회와 목사, 성경과 교우들이 전혀 없던 시대를 살았던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과 요셉은
빛나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소중한 도구로 살면서 놀라운 인생을 살다가 이 땅을 떠나갔는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손에 쥐어져있고 이를 가르치는 목사들이 널려있으며
교회와 교우들이 넘쳐나는 우리네 교인들은
무능하고 무기력한 믿음으로 고단하고 팍팍하게 살고 있는가?
그 이유는 하나님을 만나는 일에 목숨을 걸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하나님을 만나는 일에 인생을 걸기에는 세상에 만나는 사람들도 많고,
많은 돈을 벌어야 하며, 해야 할 일도 많고, 즐겨야 할 일도 널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을 만날 시간도 없으며 만날 생각조차 없다.
하나님을 만나는 일은 뒷전으로 내몰고,
육체의 탐욕을 채우고 인생을 즐기는 일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하나님을 만나서 동행하는 사람이 되려면
스스로 세상으로 난 문을 닫고 하늘로 연 문을 열어야 한다.
먼저 만나는 사람들을 대폭 줄여야 한다.
꼭 만나야 하는 사람들만 만나고,
꼭 만나야 하는 사람들도 최소한으로 줄이고 전화나 문자, 카톡으로 대신하라.
사람들을 만나면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하기 때문이다.
또한 생계를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일만 하라.
돈도 생계비를 충족시키는 수준만 벌어라.
그러면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 몇 배나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려면 뼈를 깎고 살을 저미는 아픔을 감수해야 한다.
세상의 즐거움을 내려놓고 자신이 원하는 라이프 스타일도 포기하여야 한다.
말하자면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일이며,
자기부인을 하고 십자가를 짊어지는 일이다.
그러나 그동안 해왔던 신앙방식과 삶의 방식을 고수한다면
영원히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하나님을 만나려면 쉬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전심으로 성령의 내주를 간구하는 기도의 습관을 들이고,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성령이 주시는 깨달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가슴에 새겨서 삶에 적용하려고 애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나서 동행하는 삶을 살려면
삶의 가지치기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
골방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은
고독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심심하면 TV리모컨을 찾고
틈만 나면 영화나 인터넷 게임이나 검색하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나 이삭, 야곱이나 요셉은
하나님을 만나는 최상의 환경에서 살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당신이 아브라함이나 야곱처럼 양떼를 모는 목동이 될 수 없지 않은가?
그러므로 스스로 세상으로 난 문을 닫아걸고
골방에 들어가기를 힘쓰는 고독한 영혼이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코로나사태는
하나님을 만나기에 아주 좋은 환경이 되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사람을 만날 수 없는 환경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이 골방에 들어가기보다
컴퓨터를 켜서 인터넷게임이나 영화를 보는 일을 선택한다면,
심판대 앞에서 평생 후회하는 일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크리스천 영성학교, 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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