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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이 오해하는 "소금과 빛"의 역할

007 RAMBO 2019. 10. 6. 07:18

마태복음 5:13~16 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



먼저 생각해 볼 것은...

소금은 "짠맛"을 낸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성경을 볼 때...

"본문 자체에서의 의미"에 집중하기보다는...

"내가 생각하기에 타당한 어떤 것"을 끄집어 내는 오류를 종종 범하는데...


성경은 분명히 소금의 "짠맛"을 부각시켜 상기시키려 하는데...

우리는 이것을..."기독교적 사명"으로 배웠고......

그렇게 이해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라는 말씀을 들으면...

곧바로..."교회의 대사회적 사명"같은 맥락에서 읽게된다.


말하자면 이런식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소금이 되라고 하신 진위는...

소금이 부패를 방지하는 것처럼...

썩어가는 세상의 부패를 방지하라는 우리 믿는 자의 사명이다.”


우리는...

이러한 "국민교육헌장"과 같은 문맥과 교훈을 좋아한다.


정말 성경은 그러한 말을 하는것인가?


우리는 성경을 볼 때...

그 단어가 그 "문장"에서 어떤 의미로 쓰였는가를 보아야하고...

또..그 문장이 속해있는 "문맥"에서는 무슨 뜻인지 까지를 보아야한다.


그러면...본문에서 "소금의 의미"는 무엇인가?

다시보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



여기서..."부패방지"의 의미는 찾을수 없다.

보시다시피. ..초점은 "짜게 한다"에 있다.


우리는 왜..........

“소금이 없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겠느냐?”라는 말씀을...무슨 근거로...

"소금이 없으면 무엇으로 부패를 막겠느냐?"로 이해하느냐는 것이다.


이 본문을 문장 안에서 그대로 읽어보라..

“소금은 짠맛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를 알려주는 씸플한 말씀이다.


그러면 이제...

이 말씀을 "문맥 안에서" 이해해보자.


소금과 빛의 비유는 무슨 내용 다음에 나오고 있는가?

바로 "팔복"이다.


팔복의 내용은...말 할것도 없이...

“천국백성의 상태에 관한 주님의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소금과 빛의 비유"가 속해 있는 전체 문맥은...

“하나님 나라 백성은 어떤 상태를 가지고 살아야 하느냐?”......

라는 것에 대한 가르침이다.


이렇게 볼 때...

이 "천국백성의 상태"란...

"무언가 사명을 이루는 것"에 촛점이 있는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는가"에 있는것이다.


"드러나는 업적"에 촛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느냐"에 당연히 촛점이 있지 않겠는가?


이것은 보기에 따라 비슷하게도 보이지만...

"크리스찬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가르는 잣대가 된다.


크리스찬은...

"무슨 역할을 해서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에 있지 않다.

오히려... "어떤 사람이냐"에 초점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

"소금과 같은 천국백성"이란 어떤 사람인가?


"짠맛"을 내는 것이란...


짠맛이란 "독특한 맛"을 내는 사람이다.

짠 것이 필요할 때 반드시 필요한 소금처럼...

독특한 맛을 가진 사람이다.


하나님의 백성이란...소금의 독특한 맛처럼...

독특한 정체성(맛)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소금된 교회가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해야 하느냐...에 초점이 있지 않고...


교회만 가지고 있는 독특한 성격...

그것을 드러내야만 한다는 것에 강조점이 있는 것이다.



다음은 "빛"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국민교육헌장"식의 "빛"의 해석을 좋아한다.


"세상을 밝게 하는 사명".....^^


14절을 보면..."빛의 용도"가 나온다.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



“온 세상을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라고 되어있는가?

아니다!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하”게 하는 빛이란 무얼까?

그 빛으로 인해 "다른 이들을 밝혀준다"고 쉽게 해석한다면 오류이다.


쉽게 예를들자면 이런말이다.....


등산객이 산에서 길을 잃어...어둠이 내리고...헤매이는데...

산위의 한동네에서 빛이 보이는 것...그래서...이구동성으로...

“저기에 빛이 있다!"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 "교회의 정체성"이다.

교회란 이와같이...

"세상 가운데 유일한 독특한 존재"여야 하는것이다.


이어지는 말씀도 볼까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않고 등경 위에 둔다.”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



원어만 잘 보았어도 한국교회가 전반적으로 하는 실수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구절은 오히려...

교회나 크리스찬의 사명이...

"세상을 밝게 하는 데"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 "사람에게" 는...

"목적격"이 아니라 "여격"이다.


여기서 "사람에게 비췬다" 라는 말은...

사람을 "비추는 것"이란 의미가 아니다.

좀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빛이 난다" "찬란하게 빛난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구절의 원어적 의미는...

“빛이 세상을 밝게 한다.”가 아니라...

“빛은 세상에서 찬란하게 빛난다.”라는 뜻이다.


즉 "빛의 역할"이 아니라...

"빛의 속성"을 성경은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교회나 크리스찬은...

세상 속에서 "빛"으로 드러날 수 밖에 없는 존재이고...

교회밖에는 존재할 수 없는...

독특한 "짠맛"을 낼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16절도....

마찬가지로 바른 문법으로 해석한다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의 진위는...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빛나게 하여” 이다.

차이를 알겠는가?


상대를 비추는 것 자체에 목적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가 빛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사람들에게 드러나게 되도록...

빛이 나게 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 빛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리하자면...


소금과 빛의 말씀은...

이것으로...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본문의 초점이 아니다.


크리스찬은... 짠맛의 독특한 맛을 내며...

스스로 빛나는 존재라는데 초점이 있는 것이다.


글을 쓰면서 슬픈것은...

한국교회...아니 기독교 전체가...

어떤 정체성으로 빛나고 있느냐...

어떤 맛을 유지하고 있느냐......할 때.....


한국교회가 이것을 잘 했다면...

굳이 교회가 소금으로 부패를 막으라 고함치지 않고..

빛으로 세상을 비추리라는 사명감에 사로잡히지 않아도...

본문 말씀처럼 교회는 칭찬을 받았을 것이다.


교회가 지금처럼 세상 사람들에게 지탄을 받고 있는 이유가 무언가?

이러한 사명과 구호가 없어서인가?

결코 아니다.


사명은 "내실이 빚어진 것의 결과물"로 나와야지...

사명이 앞장을 서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교회는...

"일을 많이 하려는 교회"이다.

"가시적 성과"에 목숨을 거는...


하지만 그 결과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만약 교회가 소금의 짠맛을 갖고 있으면...

당연히 소금이 필요한 사람들이 교회로 올 것 아닌가?


교회가 산위의 집처럼 빛나고 있으면...

빛이 필요한 사람이 멀리서도 보고 그리로 몰려올 것 아닌가?


하지만 교회는 짠맛이 없다..

그렇다고 빛나지도 않는다.

일만 벌이고 있다...어떤 일?


"우리는 빛과 소금이 되어 이 세상의 불의와 싸워야 합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이 말을 "기독교적 이기주의"로 보며...

필자 역시 생각을 같이하는 바이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소금과 빛의 의미를 성경말씀들을 근거해...

그 의미를 찾아야 하겠지만....

딱딱하고 긴 성경해설은 원치않는 분이 많기에...^^

결론만 도출하겠다.



성경에서 소금의 역할은 아주 분명하다.

소금은 성경에서...

"정결"하게 하는데 사용되는 도구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에 소금을 뿌림으로써...

그 제물이 되는 대상을 ‘정결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 백성이 세상속에서 독특한 맛을 가져야 하는데...

그 독특한 맛이란..."정결케 하는..." "씻어내는..." 의 의미이다.


다시 말해. ..

크리스찬이야말로 유일하게 "죄를 씻을 수 있는" 존재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계속 강조하지만...

예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너희는 소금이다!”라고 말씀하셨을 때는...


"너희가 세상을 바꿔라"...가 아니라...

바로 이 맛...........

이 독특한 맛...을 교회가 계속 가져야 한다는 말씀이다.


교회만이 죄를 씻어 성결케 할 수 있고...

교회만이 인생들에게 구원을 줄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가 맛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죄를 씻어 정결케 하는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이 ‘독특하고 유일한 맛’을 부끄러워하면 크리스찬이 아니다.

교회가 죄를 말하지 않고...

교회가 구원을 선포하지도 않고...


마음의 위로나 사업의 번영... 이런것들은...

교회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다른 곳에서 얻을 수 있다.


주님께서는 지금도 동일하게 말씀하신다.


“얘들아, 소금이 맛을 잃어버린다면...

그야말로 바깥에 던지워져 사람들의 발에 밟힐 뿐이지 않겠니?”


소금이 "맛을 잃었다"는 것이 무슨 뜻으로 보이는가?

단지 세상의 부패를 방지 못했다는 질책으로 보이는가?


성경은 그런 "국민교육헌장식" 메세지의 책이 결코 아니다.

죄를 씻는 능력........이 상실되었다는...

구원을 주는 능력...이 상실되었다는....

그런 뜻이다.


빛.............................


주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당연히 요한복음 1장의 빛으로 대변된다.


빛되신 성령님...

빛되신 성령께서 하나님과 자기 백성들 사이를 중재하시는데....


이제는 우리가...

세상을 향하여 성령의 역할...그 중재의 역할...

"하나님과 백성을 잇는 중재역할”을 한다는 뜻으로...

필자는 해석하는 바이다.


"빛"이 보여주는 "독특한 역할"역시...

소금이 가진 성격과 같다.


소금이 죄 씻음의 복음을 통해 크리스찬이 세상의 유일한 조건이라면...

빛은...

그 죄 씻음을 통해 하나님과 세상을 화목시키는 성령의 역할로 본다.


따라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할 때는...


우리는 절대로... "착한 일"을 해야 한다..라거나...

"사회봉사 활동"을 한다거나...

무슨...오지로 의료봉사를 가야한다..라는 말이 아니다.


이 말씀의 가장 원초적인 뜻은...

크리스찬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유일한 조건"이라는 뜻이다.




출처 :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들 / ess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