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가치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빌 3:18)
월남 이상재 선생 일화 중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며느리가 도둑을 맞았습니다.
재봉틀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 시절 재봉틀은 상당히 고가였을 것입니다.
상심한 며느리가 울음을 터뜨리자, 이상재 선생이 꾸짖습니다.
“너는 나라를 잃고도 울지 않더니
그까짓 재봉틀 때문에 우느냐?”
지렁이 양식을 하다가 망한 사람 얘기를 읽은 기억도 있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서는 한 번도 울지 않던 사람이
“내 지렁이, 내 지렁이” 하면서 3박4일간 울더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예수님 때문에 흘릴 눈물은 없어도
자기 욕심 때문에 흘릴 눈물은 있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것이 그만큼 중요한 것을 어떻게 합니까?
눈물이라고 해서 다 같은 눈물이 아닙니다.
어떤 일로 우느냐 하는 것은 곧 그 사람이 어떤 일을 중요하게 여기느냐를 보여줍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사람들 때문에 눈물을 흘립니다.
신학을 하기 전,
섬기던 교회에서 헌금 시간마다 찬송가 50장을 불렀습니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리네
사랑하고 의지하며 주만 따라 살리라
주께 드리네 주께 드리네
사랑하는 구주 앞에 모두 드리네
속으로 혼자 딴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참 뻥도 심하다. 달랑 천 원짜리 한 장 헌금하면서 뭘 다 드린다고 그러나…”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모든 것을 드린다고 고백합니다.
그 모든 것의 목록이 어떻게 될까요?
일단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돈입니다.
시간이나 생명을 꼽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의지나 감정도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한테 희로애락의 감정을 주셨습니다.
기쁜 일이 있으면 기뻐하고 분노할 일이 있으면 분노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단, 어떤 일에 기뻐하고 어떤 일에 분노하는지는 따져봐야 합니다.
우리의 감정을 주님께 드렸으면 우리는 주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일에 기뻐하고
주님께서 분노하실 만한 일에 분노해야 합니다.
자기의 하찮은 이해관계에 희로애락을 낭비하면 안 됩니다.
자기 자존심 상하는 일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생각하면서
하나님 영광 가리는 일은 쿨하게 넘어가는 일은 제발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 강학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