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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의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007 RAMBO 2019. 5. 14. 10:52

지금은 새로운 종교개혁이 요구되는 때이다.

이제 우리는 무책임하고 연예오락에 현혹되고

이교화(異敎化)된 사이비 기독교를 완전히 끊어버려야 한다. 



“즐겁게 지내기 위해 죄인이 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나는 너무 기쁩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면서도 재미있는 것들을 붙들 수 있습니다.”

라고 말하는 신자들은 완전히 속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삶의 상징은 십자가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십자가를 지려고 하지 않는다.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이 가까운 지금, 주님을 따른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종교적 오락거리로 골몰하고 있는 것이 너무나 놀랍고 이상하지 않은가?

지금은 잃어버린 경건을 되찾아야 할 때이다. 

1. 재미를 위한 기독교

오랫동안 미국에서 기독교는 가장 ‘재미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적지 않은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을 섬기면서도

이 세상 그 어떤 것을 즐기는 것보다 더 재미있게 살 수 있다.

신앙생활을 재미있게 하자는데 뭐가 문제냐?”라고 질문한다.


건전한 복음주의 교회들조차 그런 의견에 동조한다.

이런 사람들이 전하는 기독교는 ‘재미를 위한 기독교’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는 너무나 영광스럽기 때문에

우리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주는 것이지, 단지 ‘재미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또 하나의 다른 연예오락이라는 생각은 너무나 잘못되었다.

 

과거 청교도들, 그리고 경건한 사람들은 무수한 세상의 오락거리가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믿었다.


회심하여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은

세상의 오락거리를 포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 후 기독교계에는 서서히 변화가 나타났다.

보수적 신앙인들조차 대문을 열고 세상의 오락거리를 하나씩 받아들여서

그것들에 성수(聖水)를 뿌렸고, 그 결과 이제 누구도

세상의 오락거리를 반대하지 않는 지경이 되었다.


더 나아가 그것들을 권장한다.

이제 세상의 오락거리는 우리 신앙과 삶의 일부분이 되어 버렸다. 

2. 활동 중독증

요즈음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에 있어서 둔감하고 열기가 없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너무나 중요한 것인데,

바로 이것을 소홀히 하는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다른 일들을 하는 데 있어서는

아주 열성적이고 의욕이 넘친다는 점이다.


우리는 종교적 활동을 많이 한다.

교회 안의 여러 부서 간에 운동 시합을 하고, 교회 친목회를 가진 다음 기도회를 열고,

주말에 캠핑을 가서 캠프파이어를 하며 성경퀴즈대회를 열고, 교회소풍을 가고,

건축헌금 모금을 위해 캠페인을 벌이고, 목회자 조찬 모임도 갖는다.


신자들은 아주 신바람이 나서 이런 일들을 한다.

그러다가 개개인의 경건을 챙겨야 하는 성스러운 경내로 들어오면

그들의 열의는 갑자기 식어버리고 만다.

영적으로 냉담한 것이다.


그러면 교회는 우울한 분위기를 극복하려고 자꾸 활동을 늘리게 된다.

우리는 우울하고 침체된 마음에서 벗어나려고

이런저런 활동에 몰입하거나 종교적 놀이에 의지하지만,

실상 이런 방법은 진정한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우리의 영적인 곤고함과 비참함을 애통해하며

하나님 앞에 주저앉아 울어야 하는데,

오히려 우리는 종교적 오락과 활동에서 위로를 얻으려고 애쓴다.

영혼의 눈으로 하나님을 볼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무엇이 보이게 마련이다.


우리를 만드신 전능하고 크신 하나님을 예배하기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을 찾게 마련이다.

 

지금 교회는 우리에게 평안을 공급한다.

마치 비누를 팔듯이 요한복음 3장 16절을 간판으로 내걸고

사람들에게 평안을 사라고 말한다.


지금 우리 교회는 파티를 열고, 삼삼오오 모여서 커피를 즐기고,

놀이를 곁들인 교제를 나누면서 아주 풍성한 평안을 즐긴다. 

그러나 교회는 진정한 예배를 회복해야 한다.

 

활동 중독증은 기독교를 풍성하게 만드는 데 그다지 유익이 되지 못한다.

교회를 둘러보면 절반만 거룩하게 된 육적인 사람들의 무리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들은 성경보다는 고급스럽고 세련된 물건에 대해서,

성령님보다는 연애소설과 연속극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있다.


우리는 단순한 신앙적 활동과 도덕적 행위를 분명히 구별해야 한다.

신앙의 표피만 건드리고 본질 속으로 깊이 들어가지 못하는 통속적인 활동이 너무 많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반복되는 종교적 활동들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인가 일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그러나 실상 중요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영적인 진보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익한 활동에서 돌이켜야 한다.


우리는 ‘주님의 일’을 이루려고 애쓰는 도중에도

우리는 종종 ‘일의 주님’과의 접촉을 잃고 만다.



- 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