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결론
로마서 8장 34-39절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설교 한눈에 보기>
1. 기도는 사랑입니다
헬렌 켈러의 위대한 인생 뒤에는
앤 설리반과 간호사 로라의 사랑의 기도가 있었다.
마지막까지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다.
2. 기도에는 사랑의 수고와 고통이 따릅니다
기도에는 사랑의 수고와 고통이 동반된다.
예수님의 중보기도는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이다.
3. 기도에는 사랑의 기쁨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기도에는 수고와 고통을 압도하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다.
기도하는 사람의 심령에는
사랑과 긍휼의 열매가 맺어간다.
*핵심 메시지
기도는 사랑이다.
*청중의 적용 포인트
‘나는 기도의 수고와 즐거움을 경험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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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도는 사랑입니다
3중 장애를 겪었던 헬렌 켈러 여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녀는 장애아동으로 거의 방치되다시피하여 짐승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앤 설리번이라는 선생님을 만나면서 눈부신 변신을 거듭하여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인문학 및 법학박사 학위를 받기에 이릅니다.
그 이후 왕성한 사회 활동을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희망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위대한 여성 지도자의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생을 마감하는 순간
자신의 삶을 이렇게 회고하며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My life was so beautiful
(나의 인생은 참으로 아름다웠노라).”
위대한 인간 승리자 헬렌 켈러가 있기까지는
50년 가까이 그림자처럼 돌보며 지도했던 앤 설리번 선생님의
사랑과 헌신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앤 설리번이
이와 같이 포기하지 않는 사랑의 사람이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또 다른 한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앤을 돌보아주었던 간호사 로라였습니다.
앤 설리번의 어린 시절은
처참하다고 표현해야 할 정도로
불행하고 절망적이었습니다.
어린 소녀 앤은 보스턴의 한 어린이 보호소에 입소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앤의 엄마는 죽었고, 아빠는 알코올 중독자여서
고아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설상가상으로 보호소에 함께 들어 온 동생마저 죽고 맙니다.
이로 인한 정신적 충격으로 앤은
미쳐버렸고 실명하기에 이름니다.
날마다 자살을 기도하고, 괴성을 지르면서
짐승 같은 절망의 나날을 보내었습니다.
결국 회복 불능의 판정을 받아
치료도 포기한 채 지하 독방에 격리 수용되고 맙니다.
이 때 로라라고 하는 노 간호사가 앤을 돌보겠다고 자원합니다.
특별한 치료보다도 그냥 앤의 친구가 되어주기로 결심하고
날마다 먹을 것을 들고 가서 책을 읽어주고 기도해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견고한 여리고 성처럼
아무런 반응도 없었고, 음식도 먹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초콜릿 한 개가 없어집니다.
앤이 집어 먹은 것입니다.
용기를 얻은 로라는 더욱 간절히 기도하면서
계속 책을 읽어주며 사랑의 대화를 시도합니다.
그러자 기적 같은 일이 일어기 시작합니다.
앤의 마음 문이 조금씩 열리면서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2년 뒤에는 놀랍게도 정상인 판정을 받기에 이릅니다.
그 후 앤은 맹인학교에 입학하여 최우등으로 졸업하게 되고,
무료 개안 수술을 받게 되어 시력을 되찾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앤은 신문에 난 자그마한 광고 기사를 보게 됩니다.
그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이 아이를 돌보아줄 보모를 초빙합니다.”
앤은 이 광고를 보고는 자신이 받은 사랑을
이 아이에게 돌려주기로 굳게 결심합니다.
그 아이가 바로 20세기가 낳은 기적의 주인공 헬렌 켈러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노 간호사 로라로부터 앤 설리번에게로,
그리고 헬렌 켈러를 거쳐 창일한 강처럼
수많은 사람들에게 흘러 들어갔던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의 승리였던 것입니다.
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승리 속에는
드러나지 않고 마치 물속에 감추어져 있는
거대한 빙산과 같은 숨은 사랑의 섬김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끊임없이 드려졌던 중보의 기도였습니다.
사랑의 승리였지만, 사실은 중보기도의 승리였던 것입니다.
로라, 앤 설리번, 헬렌 켈러 다
사랑의 사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기도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기도가 사랑이요, 사랑이 기도입니다.
결국 누가 마지막까지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을까요?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2. 기도에는 사랑의 수고와 고통이 따릅니다
요한복음 13장 1절에는 예수님에 대하여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이기에
지금까지도 쉬지 않고 기도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 로마서 8장 34절에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또 히브리서 8장 1절은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죄인된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이 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더하여 요한일서 2장 1절에는 연약한 우리가 죄를 범하여도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위하여 대변해주시는
변호사와 같은 대언자가 있는데
그는 바로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말씀의 증거들은 지금도 예수님이
대제사장으로서 쉬지 않고 우리를 변호하시면서
우리를 위한 중보의 기도를 하고 계심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지금도 계속해서 기도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우리를 사랑하시되 죽기까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로마서 8장에서는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을
이 세상에서 끊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분명히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 끈질긴 사랑 때문에
끝까지 기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드리는
예수님의 간구의 기도를 그대로 이어받아
우리의 심령에서 기도하시는 분이 있는데
바로 예수의 영이신 성령님이십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는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 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고 했습니다.
이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의 기도는
결국 누구의 탄식입니까?
바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의 연약함을 바라보며 드리는
예수님의 탄식의 기도인 것입니다.
요즈음 감사한 것이 있습니다.
브니엘 특별 기도회 이후에 성도들의 기도가 깊어지고
기도의 분량도 많이 늘어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특별히 자신을 위한 기도보다도
다른 사람들과 민족과 열방을 위한 중보기도,
하나님의 뜻을 간절히 구하는 중보기도가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도의 질과 양이 달라지게 되면서
경험하게 되는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기도가 풍성해지고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 측면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도가 힘이 들고 피곤하고
지치는 현상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둘 다 정상입니다.
제가 요즈음 설교하면서 ‘기도가 낙이요 즐거움이다.
기도가 더 나은 안식이요 더 깊은 휴식이다’라고 하니까
기도에는 그런 측면만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데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기도에는 분명히
수고와 고통의 측면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19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런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기도에는 아이를 낳는 것 같은
수고와 진통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 되어 떨어지기까지
기도의 고통을 감당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장 14절에 보면
마가 다락방에서 기도했던 120명의 제자들이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때 힘쓴다는 표현은
기도가 힘이 많이 소모되는 일이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힘든 기도를
끝까지 감당할 수 있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1장 3절에는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믿음의 역사, 소망의 인내, 사랑의 수고’ -
사랑이 무엇이냐면 다름 아닌
수고를 감당하는 능력이라는 말입니다.
고난을 이겨내는 능력이 사랑입니다.
기도의 힘든 고난을 누가 기꺼이 감당할 수 있을까요?
바로 생명 다해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요,
사랑으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3. 기도에는 사랑의 기쁨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에 수고와 고통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수고와 고통을 압도하는 사랑의 즐거움, 사랑의 기쁨이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말하기를,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사랑에 빠져 본 자만이 아는
사랑의 즐거움과 기쁨이 있습니다.
이것은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귀한 행복입니다.
기도하면 왜 이런 행복과 즐거움이 있습니까?
사랑이신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누기 때문입니다.
깊은 영적 교제의 기도를 나누는 사람의 심령이
하나님과의 사랑으로 충만해지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충만해진 사람의 심령은 어떠할까요?
행복할 것입니다. 비밀한 즐거움과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결국 끝까지 기도하는 사람은
사랑으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그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기도가 사랑이요,
사랑이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도할 때
어느 한쪽으로 치우칠 때가 많습니다.
기도의 즐거움을 맛보지 못한 채
고난과 수고의 기도만 계속해서 감당한다면
그 사람은 얼마 못 가서 영혼의 메마름과 피곤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마치 영적인 막노동과 같은
맹목적이고 메마른 의무감의 기도만 드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영혼의 공급이 없이
계속해서 소진만 일어날 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반대로 기도의 즐거움과 기쁨만을 누리려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경우는 자기 내면의 만족과 즐거움만을 추구하려는
이기적인 기도의 모습으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끝까지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은
기도의 수고와 기도의 즐거움을
둘 다 경험해 본 사람입니다.
특별히 기도의 즐거움과 기쁨이
기도의 수고와 고통보다도 더 클 때
그 성도는 지치지 않고 풍성한 기도 생활을 계속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끝까지 계속해 기도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깊은 사랑의 교제가 풍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끝까지 이어지는 것이 기도의 비밀인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한번 묻겠습니다.
기도가 힘드십니까?
예, 맞습니다.
기도는 사랑의 수고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기도가 계속 힘들기만 하다면
뭔가 기도의 중요한 차원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끝까지 계속해서 기도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기도가 즐거운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기도할 때 마냥 행복한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예, 맞습니다.
기도에는 주님과의 사랑의 교제의
즐거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계속 기도하면서 언제나 즐겁기만 하다면
이 경우도 무엇인가 잘못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어쩌면 자기만족적인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기도에는 사랑으로 말미암는 수고도 있지만
사랑으로 말미암는 즐거움과 행복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만이 끝까지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의 결론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쉬지 않고 기도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7절에 나타나는 것처럼
우리의 허물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위하여
간절히 중보기도를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통 누군가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할 때에
화가 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도가 점점 더 깊어지게 되면 분노나 답답함보다는
하나님의 긍휼, 하나님의 사랑이 더 지배하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눈물로 기도하며
사랑의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제대로 드려지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척도는
기도하는 우리 심령의 결론적 상태가 어떠한지를 살펴보면 됩니다.
기도를 계속하는데도 분노가 사라지지 않거나 염려나 근심이 계속된다면
아직도 그 기도가 충분히 무르익지 않았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의 심령이
점점 더 사랑과 긍휼로 풍성히 열매 맺어간다면
그 사람의 기도는 제대로 드려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국이 낳은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요한 웨슬리는
인생 노년에 그의 일기에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나는 60년 이상 새벽 4시에 기상했고,
50년 이상을 새벽 5시에 기도와 설교를 했다.”
그가 기도하던 자리 밑의 마루는
그가 흘린 눈물 때문에 썩어졌다고 합니다.
그 기도의 눈물은 애통함의 수고의 눈물임과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는 사랑의 눈물이었을 것입니다.
웨슬레는 하나님을 사랑했기에, 이웃을 사랑했기에
인생의 마지막까지 기도를 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하기를 쉬지 맙시다.
우리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기도의 수고를 감당합시다.
그리고 주님께서 주시는
더 큰 기도의 즐거움과 행복을 누리도록 합시다.
기도가 사랑이고,
사랑이 기도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는 사람은 기도하게 됩니다.
기도의 결론은 사랑입니다.
- 박진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