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사귐으로의 초대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고전 1:9)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생각할 때에
우리는 다음의 두 가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즉 ① 어디로부터 (from) 우리를 부르셨으며
② 무엇을 위하여, 어디를 향하여(for) 우리를 부르셨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쉬운 예로 이스라엘을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몇 백 년 동안 애굽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는 그의 강한 팔로 구원하셨습니다.
그 구원은 두 가지 국면으로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애굽으로부터(from) 부르셔서 광야로(for)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애굽은 그 곳으로부터 나와야 할 필요가 있는 곳이고
광야는 향하여 갈 필요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자신을 어디로부터(from where) 부르셔서
어디를 향하여(for) 이끌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왜 주님은 광야를 향하여 백성들을 부르고 계시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에게 있어서 광야는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었을까요?
또한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애굽은 어디였으며
광야는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요나를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요나에게 특별한 사명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어디로부터 부르셔서
어디를 향하여 부르시고 계시다고 생각하십니까?
요나에게는 어디가 애굽이고 어디가 광야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흔히 평범한 사람이었던 우리를
하나님께서 특별한 일을 향하여 부르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역(일, 봉사)이 모두에게 중요한 것입니다.
자신의 사역을 소개하려고 애를 쓰면서
사역이 자신의 영적 수준을 나타내 주고 있다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엄밀히 생각해 보면 주님은 우리를 일로 부르시기 전에
먼저 하나님과의 사귐으로 초대하여 주셨습니다.
(called into fellowship with Jesus Christ)
인격적 사귐으로 먼저 불러주셨습니다.
장로로 부르기 전에, 목사로 부르기 전에,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아들과 교제하도록 부르셨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부르심입니다.
이 부르심을 잊어버리고 오히려 사역(일)을 향해 우리를 부르셨다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일부터 하다가 탈진해서
사역을 중단해야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근본적으로 우리들을 암흑으로부터(from) 불러내셨습니다.
애굽으로부터(from) 우리를 구원해 내셨으며 불러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을 광야로 불러 주셨는데
그것은 주님과 교제하기 위하여(for)
우리들을 불러내신 것입니다.
광야는 하나님과 우리가 교제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장소였습니다.
애굽은 하나님과의 사귐이 단절된 곳입니다.
애굽은 모든 것이 있지만
하나님과의 예배의 관계를 가질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반면에 광야는 아무 것도 없는 곳이었지만
하나님만을 바라보면 살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길도 없고 음식도 없고 잠자리도 불편한 곳이었지만
하나님만을 바라보면 모든 것을 공급받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광야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알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사귐의 장소였습니다.
영성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깊은 영성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깊은 친밀성(intimacy)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영성의 성장을 위하여
주님과의 사귐은 필수적입니다.
이제 우리는 겸손히
주님과 사귐으로의 초청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1. 여러분의 인생을 하나님과 깊은 사귐이 있었던 시기와 그렇지 못한 시기로 나눈다면
언제가 여러분에게 깊은 사귐이 있었던 시기라고 보십니까?
2.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이
사귐으로의 초대라고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3.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귐으로 부르신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한번 여러분의 생각을 적어 보십시오.
윤남옥